검사 정권의 통치전략, 엄벌주의
[세상읽기][무차별 범죄]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허세의 대가는 감옥에 가는 일이 될 것.”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그는 최근 급증하는 살인예고와 관련해 게시물 작성자를 예외 없이 기소해 “초장에 강력하게 잡”겠다고 했다. 강력한 대응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다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자. 허세에 감옥이 맞는가? 모방 범죄가 퍼질 때, 교육 등 대응 수단은 다양할 수 있다. 형벌의 최후 수단성은 언제나 문명국가의 중요한 원칙이어야 한다.
문제 되는 허세를 부리는 사람 절반이 미성년자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관심받고 싶어 살인예고 게시물을 올리는 청소년들이 성장기에 감옥에 갇히는 경험을 하고 전과자가 되면, ‘진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범죄학의 낙인이론, 학습이론을 통해 검증된 이야기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은 몽둥이를 가장 먼저 흔들고 있다.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처벌 도입이나 강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범죄에 무관용과 가혹한 형벌을 지향하는 담론과 실천을 엄벌주의라고 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 시행된 삼진아웃법은 엄벌주의를 상징한다. 당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두번 전과가 있다면, 세번째 범죄에는 경중에 상관없이 25년 이상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골프채 3개를 훔치면 25년형, 150달러어치 비디오테이프를 훔치면 50년형이 내려졌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이후 엄벌주의적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평가된다. 집권 정당이 어디든 엄벌주의는 큰 흐름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권에서 확인되는 엄벌주의 역시 한국 사회의 오래된 경향성이 반영된 정도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의 엄벌주의는 이전과는 다르다. 담론의 양적인 측면만 보아도 비교 불가다. 전국 일간지와 방송 뉴스에서 확인되는 ‘엄벌주의’라는 단어는 2021년 이전까지는 100건 미만이었지만, 2022년 100건, 2023년은 8월 기준 236건으로 급증했다. 한국 사회에서 엄벌주의 논의(논쟁)는 지금이 정점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3월 학교폭력 관련 조치의 강화를 추진하며 “엄벌주의는 교육 차원에서도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달 23일 현 정부가 흉악 범죄 대응에서 엄벌주의에 치중한다는 비판에 “중대 범죄를 차단하고 엄벌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답변했다. 범죄를 다루는 경력만을 쌓아온 검사 출신들이 나라의 요직을 장악한 상황에서, 엄벌주의는 현 정권의 정책적 지향점이다.
범죄를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일견 지극히 상식적으로 보이는 엄벌주의는 왜 문제일까? 복잡한 문제를 처벌로만 대응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비행의 원인은 다양하고, 개입 역시 교육적 방식부터 검토되어야 한다. 현 정부는 14살 아닌 13살부터 형사처벌하겠다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 범죄는 반드시 처벌되도록 강력하게 수사”하라 지시했다. 그 속에서 마약 중독은 범죄가 아닌 질병으로 접근해야 하고, 처벌이 아닌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최근 출생미신고 아동 방임과 살해 사건들이 뒤늦게 드러났다. 곧바로 범죄자에게 사형 선고가 가능하도록 형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부모가 징역 10년이면 자녀를 살해하고, 무기징역이면 ‘형량이 너무 높구나’ 하며 잘 키울까? 처벌은 수많은 정책 수단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엄벌주의는 처벌만으로 충분하다는 착시를 만든다. 제도 변화의 기회도 날린다. 정부의 무능도 사라진다.
여당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 이후 가장 광범위한 ‘범죄자 신상공개’ 법안을 추진 중이다. 세계적으로 폐지되고 있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헌정사상 최초로 입법예고되었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달 30일 “사형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질적 사형폐지국 지위를 던지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흉악범의 사형을 집행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흉악범 얼굴과 끔찍한 범죄 내용, 그들을 단죄하는 강한 국가의 스펙터클이 사회를 덮을 것이다. 엄벌주의가 통치전략으로까지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회는 안전해질 것인가?
전세계 인구 중 미국 인구는 5%인데, 전세계 감옥에 있는 사람 중 25%가 미국 감옥에 있다. 2021년 기준 미국 살인율은 10만명당 6.8명, 한국은 1.3명이다. 실패한 미국의 엄벌주의를 따라갈 것인가. 사회문제들을 범죄로 단순화하고, 처벌로 없애겠다는 검사들의 한정된 경험과 식견만으로 통치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교탁 앞에서 학생이 주먹질…실신한 교사, 입원까지 했다
- 국방부 공문 수준, 처참하다…‘홍범도 철거’ 주장 오류 3가지
- 해병대 전우회 심상찮다…“명예 위해 ‘외압’ 의혹 진실 밝히자”
- 이균용, 3년 업무추진비 1억3천만원…세부내역 공개는 거부
- ‘부모급여’ 0살 월 100만원씩…7월에 낳았으면요? [Q&A]
- 박정훈 대령 쪽 “분 단위 메모 있다”…외압 증거 묻자 ‘자신감’
- “10~20억 받고 1년 3번 출산시켜”…개 번식장 추한 돈벌이
- ‘박 대령 왜 보호 안 하나’…군인권보호관 사퇴 외친 군사고 유족들
- 가을은 언제 오나…체감온도 33도 늦더위 왜?
- 굴착기로 만리장성 허문 중국인 2명 체포…“지름길 만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