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게의 기구한 희생은 이제 끝날까? [오철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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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의 제조, 성능, 품질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는 매뉴얼(사전)을 약전이라 부른다.
약전에는 의약품 안전을 검사하는 표준 시험방법도 실려 있다.
대체물질을 이용하는 시험법이 미국약전에도 등재된다고 해서, 투구게의 희생이 바로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투구게 보호단체는 미국약전의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의약 기업이 여전히 투구게 혈액 시험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미국약전에 등재된다면 대체물질 전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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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의 과학풍경]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의약품의 제조, 성능, 품질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는 매뉴얼(사전)을 약전이라 부른다. 약전에는 의약품 안전을 검사하는 표준 시험방법도 실려 있다. 약전은 때때로 개정되는데, 지난 6월 발표된 식품의약품안전처 ‘대한민국약전’ 일부 개정 고시에서는 새로 등재된 ‘재조합 시(C) 인자를 이용한 엔도톡신 시험법’이 일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만든 ‘C 인자’(rFC)라는 인공 단백질을 시약으로 써서, 의약품과 의료기구가 박테리아 독성물질인 엔도톡신(내독소)에 오염됐는지를 검사하는 시험법이다.
등재된 새 시험법은 의약 전문가뿐 아니라 동물보호·환경단체 사이에서도 관심거리다. 인공 단백질 시약이 그동안 내독소 검사 시약을 만드는 데 천연 재료로 쓰던 바다생물 투구게의 희생을 줄일 대체물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받기 때문이다. 시약 제조기업들은 해마다 수십만마리 투구게를 포획해 채혈하고서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지만, 그 과정에서 투구게는 30~40%가량 죽음을 맞이하고 살더라도 번식력이 떨어져 개체수가 줄어드는 위험에 처했다.
대체 시험법이 우리나리에만 등재된 건 아니다. 대체 시험법은 1990년대에 일찌감치 개발돼 여러 나라에서 채택됐다. 하지만 세계 의약품 표준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약전’(USP)에는 아직 등재되지 않아 세계 의약계에서 널리 활용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보수적인 미국약전이 지난달 전향적인 조처를 공지했다. 재조합 단백질을 이용하는 대체 시험법을 허용하는 약전 개정안을 공지한 것이다. 미국약전은 내년 1월까지 공개 의견을 모아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투구게의 기구한 희생이 이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높아졌다.
삼엽충과 비슷하면서도 말굽 또는 투구 모양을 한 절지동물 투구게는 4억5천만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사람들의 낚시 미끼나 비료, 식용으로 희생되던 투구게는 1970년대 이후 아주 다른 운명에 처했다. 투구게의 파란 피가 내독소 물질과 만나면 빠르게 응고하는 면역반응을 보여, 1970년대 이래로 그 피에 있는 특정 성분(LAL)이 내독소 검사 시약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 투구게 혈액 성분은 수술도구나 의약품과 의료기구의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 표준 검사법 시약으로 널리 이용된다.
대체물질을 이용하는 시험법이 미국약전에도 등재된다고 해서, 투구게의 희생이 바로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투구게 혈액 시험법이 워낙 널리 쓰여왔고 일부 용도에선 계속 사용될 수 있기에 대체물질이 투구게 혈액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투구게 혈액 시약을 생산하는 기업, 기존 시험법에 익숙해진 의약계의 저항 또는 관행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구게 보호단체는 미국약전의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의약 기업이 여전히 투구게 혈액 시험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미국약전에 등재된다면 대체물질 전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4억5천만년 동안 몇차례 멸종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투구게 생물종의 역사에서 내년은 또 한번의 중요한 해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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