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진흙탕’ 버닝맨 축제
1년에 단 1주일, 8월 말~9월 초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복판에 7만명 이상 몰려드는 거대 도시가 나타난다. 사막 이름을 딴 ‘블랙록 시티’다. 여기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든다. 예술가·엔지니어는 무엇이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공연·퍼포먼스를 펼친다. 다른 참가자들도 구경에 그치지 않고 개성과 아이디어를 발산하며 자유롭게 교류한다. 화폐 대신 창작품·발명품 등으로 물물거래를 하며 지낸다. 별난 사람도 평범하게 느껴지는 곳. 개방과 창조, 공유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반문화 페스티벌 ‘버닝맨’ 축제 현장이다.
1986년 시작된 버닝맨 축제는 히피들이 만든 반문화의 상징이다. 급진적 포용·선물하기·탈상업화·자기표현·자립·책임감·공동체를 위한 노력 등을 축제의 원칙으로 내걸고 있다. 이는 다양성과 창의를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일론 머스크는 “버닝맨이 곧 실리콘밸리”라 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저명 기업가들이 ‘영감의 원천’이라며 매년 축제에 참가하자 사람들이 최신 유행 따르듯 몰렸고, 부자들의 파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부자들의 전용기 이용과 도시 조성 때 과다한 화석 연료 사용 등으로 기후위기를 가중시킨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올해 버닝맨 축제는 진흙탕 아수라장으로 끝났다. 지난 2일 기습적인 폭우가 쏟아진 탓에 행사장이 침수되며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7만여명이 고립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두세 달 치 강우량인 20㎜가 하루 만에 쏟아진 기상이변으로 사막이 물난리를 겪은 것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몇 ㎞씩 걸어서 대피해야 했고 이틀 지나서야 차를 탈 수 있었다. 4일 오후부터 블랙록 시티를 탈출하려는 6만~7만명의 차량이 장사진을 이뤘다.
버닝맨 참가자들은 “거기서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지, 안 가본 사람은 모른다”고 자랑한다. 올해 참가자들은 전례 없이 특별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유명 연예인들은 진흙탕을 힘겹게 빠져나가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벌써 올렸다. 더 많은 유명인과 참가자들이 생존 위협을 절감한 ‘기후 역습’ 현장을 ‘특별한 경험’으로 세상에 떠들면 기후위기 현실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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