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오브 스타즈 "정말 재밌다! 근데 너무 피곤해"
고전 JRPG를 표방한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됐지만, 스퀘어에닉스의 '옥토패스 트래블러' 시리즈를 제외하면 작품성과 별개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르 특유의 불친절함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보타주 스튜디오 신작 JRPG '씨 오브 스타즈'는 꽤 유의미한 성적을 거뒀다. Xbox 게임패스로 발매됐음에도 전 세계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구매했고, 옥토패스 트래블러조차 오르지 못했던 스팀 세계 판매량 톱5 안에 들어가는 영예를 안았다.
흥행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씨 오브 스타즈는 그동안의 고전 JRPG와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간결함이다. 그동안 비판받아왔던 불필요한 요소를 많이 제거했다.
클래식 JRPG를 현대적인 감성에 맞도록 적절하게 가지치기했다. 세이브 포인트도 배치하고, 잡몹 전투 노가다 구간을 삭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즘 게이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줄 건 주고, 버릴 건 버려"라는 대사에 부합한다.
그렇다고 메타크리틱 89점이나 받을 만큼 독보적인 게임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취향만 맞으면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고, JRPG가 비판 받았던 여러 요소를 과감하게 쳐낸 것도 맞다. 그래도 JRPG 고질병을 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복 노가다 구간이 없는 게임으로 편의성을 도모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또다른 문제가 여럿 발생했기 때문이다. 1의 강도로 10번 맞는 것을 10의 강도로 1번 맞는 게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피곤한 것은 비슷하다.
기존 JRPG와 다른 작품에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실망할 가능성이 있다. 전투를 비롯한 구성은 굉장히 알차다. 그동안 JRPG를 즐겨왔고, 장르적 특징을 잘 알고 있는 게이머에게는 돈이 아깝지 않은 게임이 될 것이다.
장르 : JRPG
출시일 : 2023년 8월 29일
개발사 : 사보타주 스튜디오
플랫폼 : PC / PS4, PS5 / Xbox Series XIS /닌텐도 스위치
■ '양날의 검', 브레이크와 액션 커맨드의 결합
씨 오브 스타즈는 턴제 전투의 묘미를 시스템적으로 잘 살린 게임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브레이크와 비슷한 원리의 시스템에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마리오 RPG의 액션 커맨드가 더해졌다.
격투게임처럼 적의 공격에 맞춰 커맨드를 입력하면 방어 판정이 들어가 대미지가 경감된다. 공격 타이밍에 맞출 경우 2회 타격 판정이 들어간다. 스킬 사용 시 커맨드를 넣으면 타격 횟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턴제임에도 굉장히 역동적인 전투가 가능해서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하다보니 이 같은 시스템이 '양날의 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접했을 때의 소감처럼 브레이크 시스템과 액션 커맨드가 결합되며 전투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실시간 전투가 대세인 트렌드에 맞춰 게임을 보다 대중적으로 이끌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반복 노가다 구간을 삭제한 대신, 잡몹 구간 난도를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씨 오브 스타즈는 잡몹이 굉장히 강하다. 인해전술로 몰아붙이는 잡몹이 보스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잡몹이 사용하는 스킬 하나 하나가 꽤 치명적이다. 잡몹이 잡몹을 소환한다거나, 광역기를 쓰거나, 큰 대미지를 주면서 동시에 회복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옥토패스 트래블러처럼 상대의 약점 카운터를 모두 적중시켜야 한다. 차이가 있다면 액션 커맨드가 추가돼서 사용하는 공격뿐만 아니라 버튼 타이밍을 입력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가령 행동까지 '2턴'이 남은 검 2개, 둔기 1개, 달 속성 1개 공격을 가진 잡몹이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달 속성 둔기 공격 1회, 검 공격 2회를 적중시켜야 한다. 전자의 공격은 스킬 1개로 처리할 수 있지만, 검 공격 2회는 '반드시' 액션 커맨드가 적용돼야 한다.
액션 커맨드 입력에 성공했을 때 얻는 리턴도 크지만, 리스크도 그에 못지 않다. 만약, 상대 스킬을 막지 못하면 파티 전멸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매 전투마다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를 거의 모든 잡몹 구간에서 하고 있으니 피로가 가중된다. 다행히 유물을 통해 자체적으로 난도 조절이 가능하다. 아무래도 유물 기능을 사용하면 성취감이 한 풀 꺾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울러 잡몹 구간의 전투 템포가 후반으로 갈수록 루즈해진다. 잡몹이 잡몹을 소환하고, 또 소환한 그 잡몹이 또 소환하며 전투가 질질 끌린다. 게다가 방어에 성공해도 매 공격이 굉장히 아픈데, 브레이크 공략에 실패하면 광역기를 퍼부으니 회복기를 쓰느라 전투가 또 늘어져버린다.
여기에 실수로 전멸까지 해버리면 세이브 포인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전 JRPG 특성상 그동안의 과정이 모두 초기화된다. 잡몹 구간이 갈수록 장기전 양상을 띄는데, 이를 또다시 반복할 생각을 하면 어지간한 JRPG 팬이 아니고서야 백기를 들 가능성이 높다.
소울라이크를 재밌게 즐기는 유저가 있듯이 이는 플레이어 성향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씨 오브 스타즈에 높은 점수를 매긴 이들 대부분은 아마 이 같은 성향의 게이머가 아닐까 한다.
■ 속이 꽉찬 겨울 대게처럼 빈틈없는 레벨 디자인
전투 시스템과 난도 조절이 아쉬운 건 맞지만, JRPG가 추구하는 '모험하는 느낌'을 잘 살렸다. 구간마다 기믹과 퍼즐이 적절하게 배치돼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여기에 수준높은 퀄리티의 배경이 더해지며 맵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기본적인 게임 진행과 더불어 맵 곳곳에 숨겨져 있는 요소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간을 바꾸는 능력을 통해 기믹을 해결하거나,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를 사용해 블록을 움직이며 퍼즐을 푸는 등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퍼즐 직관성도 뛰어나다. 얼핏봐도 당장 해결할 수 있어 보이는 것과 아닌 것이 명확하게 나뉜다. 덕분에 게임하면서 안 되는 퍼즐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한 적은 없었다. 굳이 뽑자면 일부 맵에서 고저차나 영역 구분이 잘 느껴지지 않아 길을 찾느라 헤맨 정도다.
탐험 보상도 확실하다. 요리 재료 같은 간단한 재료 아이템부터, 소비 아이템, 장비 그리고 새로운 능력을 지닌 키 아이템까지 다양한 종류의 보상을 통해 탐험을 장려한다. 유저 입장에서도 "다음에는 어떤 아이템을 얻을까"하는 심리에서 계속 탐험을 하게 만든다.
단순히 레벨 디자인이 잘 되어 있는 것뿐만이 아니다. 연출도 훌륭하다. 절벽을 오르거나, 낭떠러지를 점프해서 넘어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임에 변주를 준다. 여기에 더해 땅이 꺼지기도 하고, 낙석이 떨어지는 등의 연출을 통해 더욱 더 생동감을 가미했다.
청각적인 요소에도 신경 쓴 티가 난다. 발소리나 거대한 바위가 밀려나는 소리, 스킬 및 타격음 등 청각적인 연출도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나무 판자 위를 걷는 발소리나 모래 위를 걸을 때 등 주변 질감에 따라 같은 소리를 다르게 표현하며 디테일까지 신경 썼다.
또한, '크로노트리거'의 작곡가인 미츠다 야스노리가 객원 작곡가로 참여해 일부 트랙을 담당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 껏 끌어올린다. 고전 감성에 어울리는 16비트 BGM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 때 그 시절 감성과 도트 그래픽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시청각적으로 매우 만족도 높은 플레이 경험을 할 수 있다.
■ 스토리텔링 훌륭하지만, 캐릭터는 평범 그 자체
씨 오브 스타즈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세계관 설명과 개연성 부여에 많은 공을 들인다. 비언어적 표현도 디테일하게 신경썼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짤막한 애니메이션도 훌륭한 감초 역할을 한다.
반면 캐릭터와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심심하다. 여타 왕도물의 평면적인 인물과 서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태양과 달의 힘을 품은 소년소녀가 모험을 통해 강해지고, 세상을 오염시키는 '잠식자'를 정화해나가며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별다른 반전은 없다.
주인공 서사도 딱딱 정해진대로 흘러가니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어디선가 봤던 캐릭터가 외형만 바뀐 채 등장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스토리 중간중간 뿌린 떡밥은 결과적으로 예상 범주 내에서 흘러간다. 100점 만점 중 70점 정도를 주고 싶다. 게임의 흥미를 돋구기에 딱 적절한 수준의 스토리고 흠도 없지만, 그 이상의 감동은 없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 개선점이 보였다. 스토리를 보다보면 키를 연타하다가 무심코 지문을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씨 오브 스타즈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대화 다시보기' 기능이 없어 다시 볼 방법이 없다. 찝찝하기도 하고, 흐름이 끊기기도 한다.
물론 고전 JRPG를 표방했기 때문에 그 감성을 살려 시스템적으로 없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지 않았는가. 블리자드의 와우 클래식도 바뀐 트렌드에 맞춰 일부 기능을 현대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시대다. 굉장히 아쉬운 대목이다.
씨 오브 스타즈는 성우 더빙이 없다. 인디게임의 예산적 한계일테지만, 아무래도 연기력 좋은 성우들의 목소리가 없으니 안 그래도 심심한 스토리가 더욱 무미건조하게 다가온다. 더빙 유무를 중요시하는 유저라면 이를 꼭 감안하고 구매해야 한다.
1. 브레이크와 액션 커맨드 통해 최고의 전투 몰입감 선사
2. 지루할 틈 없이 촘촘히 배치된 기믹과 퍼즐 요소
3. 시청각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출
4. 유물을 통해 유저 입맛에 따라 간단하게 난도 조절 가능
1. 잡몹 구간이 길고 하드해서 피로감이 극심함
2. 스토리가 심심하고, 개성이 부족한 캐릭터
3. '지난 대화 다시보기' 기능의 부재
4. 더빙 성우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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