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디자이너 되고 싶다면 학점 말고 `이 것` 잘 써야" 이상인 유튜브 디자이너[오늘의 DT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 '무인양품'의 하라 켄야, '배달의 민족'의 김봉진... 일견 닮은 데가 없어 보이는 이 경영자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정답을 주겠다. 이들은 모두 디자이너 출신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과거 산업계의 주변부에 있던 디자이너들이 경영의 전면으로 나서 주목받는 것일까. 그 정답은 찾아내기 어려워 이상인 유튜브 스태프디자인리드(Staff Design Lead)를 만났다.
그는 미국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디자인 에이전시 R/GA, 딜로이트 디지털,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현재 유튜브에서 근무하고 있다. 뉴욕과 시애틀에서도 주목받는 한국인 디자이너인 이상인은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의 저자이기도 하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이 씨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무엇이라도 괜찮다고. 성장환경이나 학창시절, 디자이너가 되고 미국으로 간 계기가 다 궁금했다.
"오랫동안 주방용품 회사를 운영해오신 부친도, 글쎄요. 말하자면 디자이너셨어요. 사업가이지만 직접 제품 디자인을 해서 특허를 출원하고 상을 받기도 하셨거든요. 재주 많은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을 테고요."
평범한 인문계열 재수생이던 그를 하루 아침에 바꿔놓은 건 어느 날 신문에서 본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전면 기사였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백발의 노인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저씨도 아니고 할아버지는 더더욱 아닌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이렇게 멋있는 사람은 진짜 뭐 하는 사람일까. 아르마니는 당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였다. 의학도 출신인 그는 분명 포멀한 정장임에도 운동복처럼 편안하고 드레스처럼 우아한 옷들을 내놓으며 전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을 했으니 입시 미술부터 시작해야 했다. 일년을 더 준비하고야 국민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뉴욕 SVA로 편입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디자인학교를 다닌 그에게 차이점을 물었다.
"일단 미국 디자인 학교는 교육 과정 자체가 실용적, 현실적이에요. 일단 '교수님'이 없죠"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교수님 대신 현업의 시니어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일을 마치고 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매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MoMA에 재직하던 선생님의 수업은 관광객이 돌아가고 불이 꺼진 MoMA에서 시작됐다.
"원래 디지털 기기를 좋아했어요. 아이폰 4가 출시됐을 때 그 걸 사려고 소호 매장 앞에서 7시간 줄을 설 정도였으니까요. 관심이 크다보니 브랜딩 수업 과제를 할 때에도 그 브랜드에 맞는 웹이나 애플리케이션(앱)을 꼭 적용시켜 만들어 갔어요. 폴라 셰어 선생님이 그 걸 보더니 '너는 디지털을 좋아하고 그 분야는 앞으로 더 커질 테니까 전문화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셨죠." 유명 디자인 컨설턴트 회사 '펜타그램'의 파트너이자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폴라 셰어도 그의 스승 중 하나였다.
그래서 디지털로 유명한 디자인 에이전시에 취업을 했다. '나이키+'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디자인 에이전시 R/GA였다. 당시 기억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때 삼성이 자신들의 웹사이트 '삼성닷컴'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려고 하고 있었어요. 우리 나라 대표 기업의 '디지털 얼굴'이 되는 홈페이지의 리뉴얼 작업에 참여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즐겁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다시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당시 우리가 만들었던 홈페이지 프레임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았어요."
글로벌 ICT기업의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예상과는 다른 답을 내놨다. "가끔 미국 빅테크 취업을 바라는 한국의 디자이너 후배들을 만나고 일자리를 공유하기도 해요. 그래서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를 받아볼 기회가 자주 있어요. 사실 미국 빅테크 기업에선 학점은 물론 졸업학교까지도 거의 당락에 영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건 뭘까. 그는 포트폴리오라고 강조했다. 그 다음은 자신의 업무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면접이라고 덧붙였다. "빅테크들의 경우 면접 과정이 굉장히 길고 어려워요. 면접관인 전문가들과 심도 있게 이야기 나누는 거라 실력을 속일 수도 없어요."
이를 위해 그는 데이터 중심으로 결정하는 '데이터 드리븐(Data-Driven)'에 입각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을 권한다. "단순히 '멋있어서', '예쁘니까'로 디자인의 이유를 설명하면 안되죠. 한국 후배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거 왜 썼나' 물으면 기능네 대한 설명이나 존재 이유는 없고 오브제적 성격의 디자인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이성적이지 많은 말이죠. 순수 예술가가 아니라 현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에게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에 더해 디자인은 팀워크이기 때문에 소통 능력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했다.
산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외주 인력이란 불안정성과 박봉에 시달린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인하우스 디자이너 채용이 많이 늘어난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디자이너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란 인식이 있죠. 그래서 더욱 후배들한테 시각적 조형, 아름다움의 탐구 같은 것들이 물론 중요하지만 이걸 가지고 어떤 기술에 적용하느냐로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이 우리 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글로벌ICT 기업에서 직접 생성형 AI나 애플의 가상현실(VR) 기기 등을 접하는 입장이다. 정말로 스마트폰 다음에 올 패러다임 변화라고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각각 따로 진화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복합적으로 연계되며 발전하고 있다고 봐요. VR 기기가 스마트폰이 될 수도 있고 경량화하면서 흔한 소지품이 될 수도 있죠. 생성형 AI도 AI의 한 갈래이나 파괴적 혁신으로 완전히 다른 형태가 나온 것이잖아요. 인공지능 기술이 처음 나오면, 그것을 만들고 구현해내는 엔지니어링이 중요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이용자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 등은 디자인의 영역으로 넘어 옵니다."
그는 빅테크 기업에 근무할 경우 가장 좋은 점은 새로 나오는 기술들을 먼저 체험하고 기술 개발에 참여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상품과 브랜드가 전세계 수백만명 많으면 수십억명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제일 좋다고도 했다. 디자이너 이상인은 밀려오는 '테크의 파도'를 타면서 즐겁게 커리어를 이어갈 작정이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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