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세수 '펑크'를 왜 외환기금으로 메우려 할까? [와이즈픽]
올해 '세수 펑크' 최대 60조
나라 곳간에 '구멍'이 났다. 그 크기가 작지 않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세 수입은 217조 6천억 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261조 원) 43조 4천억 원이 줄었다. 남은 5달 동안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세금을 걷는다고 치면 최소 48조 원가량이 부족하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처럼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힐 수 있다. 이러면 세수 부족은 최대 60조 원대까지 전망된다. 역대급 '세수 펑크'다.
예상치 60조 원 가운데 60%인 36조 원 정도는 중앙정부가 메워야 한다. 나머지는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몫이다. 올해 정확한 세수 부족 규모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 나온 예상치만 돌고 있는 상황인데 기획재정부는 조만간 정확한 세수 부족분을 재추계해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세수 부족분을 어떻게 메우려 할까? 세수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게 바로 추경이다. 빚을 내야 하니 정부로서는 탐탁지 않지만 어쨌든 기본 중 기본이다. 추경 외에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는 불용(不用)과 여윳돈을 의미하는 세계(歲計) 잉여금, 그리고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이 있다. 기금은 가계로 치면 예금이나 보험과 같은 것이다. 당장 쓸 돈은 아니지만 언제든 쓸 수 있게 쟁여 놓는 재원이다.
'추경'은 없다는 추경호 부총리…결국 기금뿐
'빚을 내지 않는다' 건 현 정부의 확실한 기조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국채 발행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확고하다.
그럼 나머지 재원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이른바 '영끌' 개념이다. 먼저 불용으로 10조 원에서 20조 원, 세계 잉여금으로 최대 5조 원, 나머지는 결국 공자기금일 수밖에 없다. 공자기금은 여러 기금을 통합 관리하는 계정을 말한다.
공자기금은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간편 입출금통장'과 비슷하다. 언제든 필요할 때 빼 쓸 수 있는 기금 저수지와 같은 것이다. 불용과 세계 잉여금을 제외하면 기금으로 메워야 할 부족분은 적게는 10조 원에서, 많게는 20조 원에 이른다. 기재부의 계산은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
'환율 방어' 목적 외환 기금 20조 원으로?
공자기금에서 바로 빼서 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데서 끌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 유추할 수 있는 정부 자료가 있다. 바로 내년도 예산안이다.
정부는 지난 1일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했다. 이때 기금운용계획안이 함께 건네졌다. 외국환평형기금채(외평기금) 20조 원을 조기 상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외평기금은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는 데 쓰인다. '환율 방어' 자금인 셈이다. 계획안을 보면 외평기금 재원을 공자기금으로 넘기고 이를 정부가 일반회계로 전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급격한 환율 변동이 생기면 기금 펑크도 예상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공식 자료를 통해 보도되고 있는 기금 활용 방안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확실한 부정도 아니다. 추경을 하지 않고 나머지를 다 활용해야 겨우 메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기금 활용밖에 없다. 조만간 이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구멍 난 나라 곳간을 메울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발표하지 않는 이상 이 방법밖에 없다.
왜 굳이 '기금'에 손대려 할까?
목적이 분명한 기금을 왜 굳이 일반회계로 쓰려할까? 정부로선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올해 공자기금 정부내부지출 153조 4천억 원의 최대 20%인 약 30조 원까지는 정부 재량으로 일반회계에 투입할 수 있다. 국회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제1당인 민주당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현 정부에겐 그렇다.
전 정부에서도 외평기금을 쓴 적이 있었다. 2020년 추경 예산안 재원 마련 과정에서도 외평기금 공자기금 신규 예탁을 줄이는 방식으로 2조 8천억 원을 조달한 적이 있었다. 다만 규모의 차이가 크다. 기금 활용을 주로 하는 거랑 보조 역할만 하는 것의 차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빚을 안 내겠다는 정부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있다. 국가 채무가 급증하는 건 사실이다. '2023∼2027년 국가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내년 적자성 채무는 792조 4천억 원이다. 올해 예산인 721조 3천억 원보다 9.9%나 늘었다. 특히 2027년에는 적자성 채무가 968조 6천억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성 채무는 말 그대로 국가의 '나쁜 채무'다. 채무에 대응할 수 있는 자산이 아예 없거나 부족해 세금 등으로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채무에서 적자성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데 있다. 지난해 63.3%에서 올해 63.6%, 내년에는 66.2%, 2027년에는 68.3%로 눈에 띄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급 세수 펑크가 예상되고 이를 메우는 방법이 빚 또는 기금밖에 없는 상황에 우리 국가 경제가 놓여 있다. 재정을 늘려 국가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빚은 이미 많은 상황이고 가계 예금이나 보험과 같은 성격의 기금을 깨서 이를 메우려 하고 있다. 역대급 부채로 허덕이는 우리 가계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 정부 입장에선 빚을 내지 않는 일종의 '묘수'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결국 '돌려막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오는 시기만을 늦출 뿐이라는 비판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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