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내가 홍범도 흉상에 반대하는 이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사학자 E H 카의 격언은 역사가 현재의 관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이루는 재료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들이지만 사진가가 자신의 구도 안에 세계를 담듯 역사도 역사가의 이념에 따라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73년째 내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은 이념에 따라 현대사에 대한 해석이 특히 달라진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최근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홍범도 흉상의 철거를 추진하는 것을 두고 일어난 논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정치권의 이념이 과거와 달리 분열돼 있는 것을 보여준다.
홍범도 흉상 철거가 논란이 된 이유는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에서 레닌에게 권총을 하사받은 공산주의자로 변신한 그의 행적 때문이다. 일제의 강점과 6·25전쟁을 연이여 겪은 한국 현대사에서 독립운동과 친일, 반공과 용공을 넘나든 인물은 많다. 일제에 대항해 요인 암살과 관공서 파괴를 전개했던 김원봉은 해방 후 김일성에게 협력했고, 일본군 출신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에 가담했으나 5·16 쿠데타 이후 반공을 국시로 삼고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은 대한민국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현재의 이념에도 영향을 준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6·25전쟁의 전범인 김원봉의 서훈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변질되는 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의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을 최근 일부 정치 세력이 기리려 하는 것 또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기존의 대적관을 약화시키는 시도다.
이념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에서 이념의 경쟁이 벌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가 존립하기 위해선 국민을 통합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근본 이념이 요구된다. 국가의 이념을 바꾸려면 그 정당성과 득실이 명확히 고려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반공 이념이 약화되면 득을 보는 건 누구인가?
[김형주 오피니언부 kim.hyungj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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