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역사의 복원자인가 ‘가짜역사’ 창조자인가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발전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역사적 사실을 분석하거나 활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집단 학살의 희생자들을 찾아나서거나 고대 문헌을 해독하고, 역사적 사실을 교육하는 작업에 AI가 폭넓게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AI가 거짓 역사를 꾸며내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사례도 목격된다. AI의 양면성에 관한 딜레마는 역사 분야에서도 심화될 전망이다.
잊혀진 사람들 찾아나선 AI
AI를 활용해 과거의 진실을 찾으려는 시도는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주목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홍보 전문가이자 아트 디렉터인 산티아고 바로스가 AI 기술을 활용해 ‘더러운 전쟁’(1976∼1983년)이라 불렸던 군정 시기에 실종된 아이들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반정부 활동을 하던 정치인, 학생, 노조원 등 최대 3만여명이 실종됐다. 이 중에는 약 500여명의 아이도 포함돼 있다.
실종된 아이들은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행방 확인이 쉽지 않았다. 이에 바로스는 AI를 활용해 그림 파일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인 ‘미드저니’로 실종 아동들의 몽타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종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결합해 성인이 된 자녀의 얼굴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같이 작업한 결과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있다. 자신의 출신에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취지다.
AI를 활용해 잊혀진 사람들을 추적하는 기술은 최근 ‘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 사례에도 적용됐다. 유족들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나치 독일에 잡혀간 후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을 찾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AI가 홀로코스트 기념센터 등이 보유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진 50만장을 뒤져 희생자가 혹시라도 찍혔을 지 모를 사진을 찾아내 준다.
AI는 고고학 분야의 복원 작업에도 활용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 런던’과 영국 옥스포드대 고전학부 등의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AI를 이용해 70% 이상의 정확도로 고대 문헌을 해독하는 기술을 개발해 고고학계의 관심을 끈 바 있다. 또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연구팀은 AI 필체 분석 등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필사본으로 알려진 ‘사해 두루마리’(사해 사본)이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썼다는 증거를 발견하기도 했다.
거짓역사 꾸며낸 사례도
반면 AI가 역사 분야에 가져온 부작용도 있다. ‘미드저니’와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재미삼아 거짓 역사를 꾸며내는 사례가 빈번해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 등에는 미국에서 2012년 7월 태양폭풍에 따른 정전이 발생했다든지, 캐스케디아 단층대에서 진도 9.1의 지진이 발생해 북미를 초토화시켰다는 등 거짓 사건을 꾸며낸 내용이 올라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들 콘텐츠는 AI가 재구성한 사진과 기자회견 내용까지 곁들여 사실감을 더했다.
역사적 인물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들은 최근 ‘역사 왜곡’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역사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읽고 이를 근거로 응답을 구성하는데, 부정확한 사실을 언급하거나 논란이 있는 인물을 미화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여러 해석이 존재하는 역사의 특성으로 인해 정확성에 한계를 보인 것이다.
비슷한 논란은 최근 일본에서도 발생했다. 적십자사 도쿄도지부는 100년 전 간토대지진의 참상을 되새기는 취지에서 기존 문헌을 근거로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증언’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하지만 원래 없었던 증언을 새로 만들어내는 기획전의 특징으로 인해 대중들 사이에선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고, 행사는 아예 중단됐다. 적십자사 측은 “AI를 활용한 일종의 픽션을 생각한 것인데, 새로운 증언이라는 말을 사용해 오해가 발생한 것같다”고 해명했다.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데 유용하면서도 언제든지 조작도 가능한 AI의 양면성은 향후에도 학계와 전문가들의 고민거리가 될 전망이다. 음모론자에게 악용될 경우, 특정한 목적 하에 왜곡된 역사를 퍼뜨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인권단체 ‘위트니스’의 샘 그레고리 이사는 “속임수과 가스라이팅, 거짓 정보라는 회색 영역에 맞서면서 미디어가 가진 힘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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