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가을, 詩는 내 그림의 부표가 된다"
릴케 시 오마주한 회화 18점
8일부터 대전 헤레디움 전시
"나는 이미지로 사고하며 시가 이 작업을 돕는다. 시는 부표와 같다."
독일 현대미술 거장 안젤름 키퍼의 전시 '가을'이 대전 헤레디움에서 열린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오마주한 작품을 모은 전시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안한 시대를 살다 처연하게 떠난 릴케의 시를 부표처럼 붙잡는, 쇠락의 계절 가을에 어울리는 전시다.
릴케의 대표작은 '가을날'과 '가을' 등이 꼽힌다. 사계의 전환 중 가장 슬픈 가을에 쇠락과 낙하의 의미를 곱씹는 서정시들이다. 릴케는 가을을 노래한 시에서 신을 향한 찬미를 잊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키퍼의 18개 작품 중 다수가 가을과 관계돼 있다.
키퍼의 가로 2.8m 대작 '가을'은 당장이라도 불에 타버릴 듯한 색감의 낙엽이 세 그루 나무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납에 채색해 구현된 낙엽은 당장 떨어질 듯 위태롭지만, 울긋불긋한 색감이 집적돼 위대한 풍경을 이룬다. "낙엽을 비추는 빛과 그 빛이 만들어내는 색감이 너무나 강렬해서,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사진을 찍고 작업에 착수했다"고 키퍼는 적었다.
또 다른 작품 '현재 집이 없는 사람'도 릴케 시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라는 릴케의 한 시구(시 '가을날')에서 가져왔다. 지평선이 보이는 대지에 입이 마른 나뭇가지 하나가 떨어져 있다. 황폐한 광야에서의 안식과 구원을 묻는 듯한 울림이 크다. '결국 모든 생명의 귀결은 흙'이라는 생사의 통찰에 내재돼 있다.
안젤름 키퍼는 루브르 박물관, 베네치아 궁전, 뉴욕 록펠러센터 등 세계 유수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인 거장이다. 그는 2007년 루브르 박물관에 영구적으로 선보일 작품을 설치하는 영예를 얻었다. 1953년 조르주 브라크 이후 생존 작가 작품이 루브르에 입성한 건 사상 두 번째였다.
한때 시인이 되길 갈망했던 키퍼는 릴케뿐 아니라 파울 첼란 등 고통스러운 생애를 살았던 유럽권 시인의 시를 작품에 두루 차용하기로도 유명하다.
키퍼는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자 한다. 일어났던 엄청난 일들과 잊힌 엄청난 것들 사이에 긴장이 존재한다"며 "나는 무엇이 있었고 있지 않았는지 보여주는 일을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대전 헤레디움은 지난 3월 가오픈하고 이번 전시가 개막하는 8일 정식 개관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수탈을 위해 세워진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이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함선재 헤레디움 관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문명의 폐허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며 "키퍼의 작품은 폐허와 허무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시작이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 철학은 전쟁 이후 폐허가 될 운명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헤레디움의 탄생과 맞닿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9월 8일 개막한 뒤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린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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