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임금체불 매년 1000억 넘는데…대책은 곳곳에 구멍

김지환 기자 2023. 9. 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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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가 2018년 12월 경기 안산시 원곡동 사무실에서 한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 내역을 보여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캄보디아인 A씨는 2015년 6월 한국에 입국해 경기 이천시의 한 농장에서 2020년 3월까지 일했다. 그는 2016년 7월부터 3년8개월 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인정된 체불임금만 3400만원가량이다. 이후 A씨는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받지 못한 채 3년 이상 한국에 머물며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그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국내에 체류해야 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기타(G-1) 비자로는 일도 못한다. 고향에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2017년 입국한 캄보디아인 B씨 역시 경남 밀양의 한 농장에서 일하면서 임금체불을 겪었다. 농장주는 컨테이너를 숙소로 제공하면서 한 달에 20만원을 월급에서 공제했다. B씨는 “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은 지 3년째다.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참았는데 아직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B씨는 4년 10개월간 일한 뒤 ‘성실근로자’로 인정받아 캄보디아에 갔다가 다시 한국에서 4년 10개월간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성실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다시 한국에 올 수 없었다면 (임금체불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영인·이탄희, 정의당 이은주 의원과 이주노동119 사업단이 5일 공동주최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피해 증언대회 및 대책 국회토론회’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이 ‘돈 벌러 한국에 왔다가 돈 떼인’ 사연을 쏟아냈다.

정부는 내년 비전문취업(E9) 비자 이주노동자 규모를 역대 최대인 12만명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증가세인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은 2019년 이후 한 해 평균 1000억원을 웃돌고 있고 전체 임금체불 사건 피해자 중 이주노동자 비율은 12%에 달한다.

현재 체불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는 내국인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대지급금제도와 외국인근로자고용법상 임금체불보증보험제도가 있다. 두 제도 모두 한계가 있다. 우선 임금체불보증보험의 한도는 1인당 400만원에 불과하다. 대지급금제도의 경우 사각지대가 있다. 5인 미만 농·어업 사업장은 임금채권보장법이 적용되지 않아 이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대지급금을 받을 수 없다.

동티모르 노동자 C씨는 2016년 7월 한국 땅을 밟고, 전북 군산에 있는 2.5t 소형선박(상시 노동자 3명)에서 지난해 4월까지 일했다. 고용허가제의 최장 근무기간은 4년 10개월이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특별 체류기간 연장을 받아 5년 9개월간 근무할 수 있었다. C씨의 임금체불액은 퇴직금 포함 1300만원가량이다. C씨는 5인 미만 어업 사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지급금을 신청할 수 없었다. 김호철 성요셉노동자의집 사무국장은 “C씨의 경우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어 오롯이 민사소송을 통해서만 체불임금을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C씨는 “비자가 오는 11월에 만료된다. 비자 연장도 안 돼 월급 다 못 받고 동티모르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기록의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노동자가 노트 등에 기록한 노동시간을 인정해주는 근로감독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근로감독관도 있다. 영상 증언에 나선 미얀마 이주노동자 D씨는 노동시간을 기록한 종이를 들어 보이며 “제가 공장에서 일한 시간을 매일 이렇게 적는다. 하지만 노동부에선 이걸로 안 된다고 한다. 억울하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E씨도 “회사가 노동시간을 기록하지 않아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내가 대신 시간을 기록했는데 회사에선 기록이 잘못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아무런 자료를 작성하지 않고 보관하지 않은 사용자가 결국 이기는 싸움이 된다”고 짚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임금체불 소송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생계유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최 변호사는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 부여는 임금체불 공익신고자인 이주노동자 보호를 위한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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