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개최 ‘인도네시아 패싱’ 바이든, 인도·베트남행 ···필요한 동맹만 콕 찍어 ‘체리피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뉴델리와 하노이에는 가지만, 자카르타에는 가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를 건너뛰고 인도와 베트남으로 향하면서, 필요한 동맹만 콕 찍어 관계를 강화하는 ‘체리피킹’(취사선택) 외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표면적으로 ‘아시아 중시 정책’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중국 견제에 필요한 동맹국만 골라 집중 관리하는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5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를 건너뛰는 것이 실수인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를 방문한 뒤 바로 베트남으로 향하면서도, 지척인 인도네시아에 들르지 않는 배경을 분석했다.

이날 개막하는 아세안 정상회의에는 바이든 대통령 대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참석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는 직접 방문해 훈센 당시 총리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7~10일 열리는 G20 정상회의 개최국인 인도를 방문한 뒤 베트남으로 이동해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때 적국이었던 두 나라가 국방·안보 협력으로까지 밀착하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 일정이 냉정하게 계산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근현대 동남아시아 역사 관련 저서를 다수 집필한 마이클 바티코티스는 블룸버그에 “(미국의 아시아 외교 목적은) 중국을 겁주는 것”이라며 “중국이 참석하는 다자 포럼보다는 (지리적으로 중국을 포위할 수 있는) 나라들을 하나씩 골라 따로 공략하는 편이 쉽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네시아보다 베트남에 집중하는 것이 중국 견제 효과를 더 극대화할 수 있다. 비동맹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앞으로도 미·중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반중 정서가 강하다. 또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어 왔다. 미국이 베트남까지 포섭하면 중국을 압박하는 포위망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에 이어 최근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다만 미국의 속보이는 전략이 근시안적인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좋은 관계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진정성과 성실함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아시아 국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 내세웠던 미국 우선주의를 아직 잊지 않았고 바이든 정부의 체리피킹식 외교는 미국이 아시아와의 실질적 파트너십이 아닌, 편의주의적 관계만을 원한다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