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규제 막혀 … 빛 못보는 혁신 의료기기
입원 환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수액을 맞는다. 환자 상태에 따라 생리식염수, 포도당, 전해질 등 기초 수액을 비롯해 비타민, 단백질 등 영양수액을 맞기도 한다. 몸에 주입되는 수액량은 표면에 눈금이 표시돼 있어 간호사들이 주로 눈금에 맞춰 사용한다.
그러나 환자의 혈관 저항 및 외부 의료 환경(실내 기온, 바람)에 따라 실제 수액 주입 속도는 ±20% 이상 차이가 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한 광역시 5개 종합병원 간호사 276명을 대상으로 수액 속도 조절 방법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수액유량조절세트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고 답했다. 주입 속도와 주입량의 편차로 약물이 과소 또는 과다하게 주입돼 환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의료 현장에서 부정확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적절한 대체수단이 많지 않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현직 내과의사가 수액 치료 중 의료사고를 계기로 현재 사용 중인 '수액유량조절세트'의 부정확성과 '인퓨전 펌프(Infusion pump)'의 안전성을 개선한 '자동 정밀주입장치(Accu-Drip / Accu-Valve)'를 개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두용 둔산 한빛내과 원장(의학박사)이다.
이두용 원장은 "항공우주연구원과 10년 동안 협동 연구개발해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국제 진료지침에 부합하는 자동 정밀주입장치는 강제압력 방식인 인퓨전 펌프와 달리 중력(수압차)에 의한 일정 압력 방식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자동 장치"라면서 "항암제 투여 환자, 소아과 환자의 안전 확보에 최적이며 인퓨전 펌프의 대체 기기로서 의료선진국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혁신 제품"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고 암병원인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의 진료지침(2021년)을 포함한 해외 가이드라인에서 '항암제를 말초정맥에 주입하는 경우 인퓨전 펌프를 사용하지 말 것과 중력으로 주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 원장은 "강제압력식 펌프는 사용 중에 바늘 끝이 조직으로 이탈해도 계속해서 수액을 주입하기 때문에 압력이 높아져서 치명적인 부작용, 구획증후군, 조직괴사를 일으킬 수 있지만, 중력에 의한 주입은 압력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에 주입이 자동으로 멈추게 되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정밀 자동주입장치는 아큐 드립(Accu Drip)과 아큐 밸브(Accu Valve)로 구성돼 있는데, 아큐드립은 국내외 특허 등록 5건, 2018년 보건신기술 인증, 2021년 조달청 혁신시제품 지정을 비롯해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국제표준개발사업에 선정돼 현재 국제 표준 등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빛엠디 제안으로 올해 11월 서울에서 의료기기 국제표준회의(ISO TC76 워킹그룹)를 개최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아큐 드립은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일정한 압력을 구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실시간 주입량이 디스플레이에 표시돼 정확하고, 탈부착이 쉽고 부피가 작고 가벼워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혁신적인 자동 정밀주입장치는 정부 연구개발(R&D)과 정부 출연 연구소가 참여해 개발됐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수가 심사 과정에서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불합리한 규제로 인해 지난 1년 반 동안 병원에 진입조차 하지 못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원장은 "이는 윤석열 대통령께서 연일 강조하는 기업 투자에 결정적 장애물인 킬러규제 톱15의 신산업 분야 신의료기술 규제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자동 정밀주입장치의 요양급여와 관련해 아큐 드립은 장비를 사용하는 행위, 아큐 밸브는 의료행위에 필요한 치료재료(소모품)에 해당된다.
이 원장은 2020년 9월 심평원에 아큐 드립의 요양급여대상·비급여대상 여부 확인을 신청했다. 답변으로 행위 내용과 성격이 기존 인퓨전 펌프를 사용한 경우와 동일해 'KK058'로 분류되고 '요양급여대상'으로 통보를 받았다. 2021년 5월에는 치료재료(아큐 밸브 Ⅳ 세트)의 수가 결정을 위해 치료재료 전문평가를 받았다. 평가 결과 전용 장비(아큐 드립)를 사용하고, 인퓨전 펌프와 비교 시 강제 주입·급속 주입의 가능성이 낮아 임상적 유효성이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으로 기존 수액유량조절기와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중분류(M1018062)'를 신설하고 상한 금액을 결정했다.
그러나 병원에 자동 정밀주입장치를 납품하기 전 행위 수가와 치료재료 수가가 얼마냐는 질문을 자주 받자, 정확하게 하기 위해 이 원장은 재차 보건복지부에 질의를 했다. 그 결과 절차와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아큐 드립의 행위료 실행을 부인하는 '이중 보상의 우려가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행위료와 치료제 중 하나만 해주겠다는 얘기다. 이 원장은 "행위와 치료재료는 완전히 별개이고, 급여대상인 관련 행위(아큐 드립)와 이를 전제로 중분류해 별도 산정된 치료재료(아큐 밸브)에서 하나만 선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바늘과 실' 같은 전용 기기와 치료재료 전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법규상 치료재료의 비용은 의료기관의 실구입 가격으로 산정하므로 이윤이 없다. 따라서 기기 사용료가 없으면 병원에서 구입 비용에 대한 보상 방법이 없어서 기기 구매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원장은 지난 6월 복지부(심평원)와 미팅에서 2020년 9월, 2021년 5월 아큐 드립의 급여분류(KK058)를 뒤집고 행위 내용과 성격이 전혀 다른 '정맥 내 잠적주사(KK051, KK052, KK053)'로 기재해 행위 조정을 신청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마지못한 선택으로 요양급여대상·비급여 대상 여부를 3번째 재확인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회의 중 재떨이 던진 사장…그날 밤엔 “돈 줄테니 사직서 써라” - 매일경제
- 주차장서 롤스로이스 ‘쿵’...“괜찮다”는 피해 차주의 정체 - 매일경제
- 0세 70만원→100만원…내년부터 ‘부모급여’ 더 많이 받는다 - 매일경제
- “그것만은 비밀로 해줄게”…이다영, 김연경과 팔베개 셀카, 무슨 의미? - 매일경제
- 5년전 바람핀 남자와 또 바람난 아내…위자료 재청구 가능할까 - 매일경제
- “어색한데 이게 되네”…요즘 은행 화상통화로 체크카드 발급 - 매일경제
- 7억대 마약 밀수 시도한 고딩…“유럽 마피아 아들이 시켰다” - 매일경제
- ‘흰검 모나미룩’도 이상봉 만나면…“국민 볼펜, K몽블랑될 것” - 매일경제
- “나만 몰랐나”…손주 키우는 할머니집, 전기요금 30% 깎아준대 - 매일경제
- 황인범, 세르비아 명문 즈베즈다 이적 “亞 최고 선수 온다” [오피셜]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