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팝’의 목소리 가세한 동서양 오케스트라
“음악에 국악적 요소가 몇 퍼센트라고 나누진 않잖아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전통이 저한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서도밴드’ 리더 서도)
“국악은 옛날 음악이 아니라 당대의 음악이죠. 국악관현악단도 당대의 우리 음악을 하는 겁니다.” (김성국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
전통을 ‘보존과 계승’이란 울타리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 시각이 비슷했다. 오는 1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일 ‘믹스드 오케스트라’는 이런 생각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공연. 말 그대로 국악기 연주자 56명과 양악기 연주자 38명 혼합 구성이다. 동서양 악기가 총출동하는데, 아쟁과 첼로가 음을 맞추고, 태평소와 트롬본, 드럼과 꽹과리가 대거리한다. 믹스드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오프라인 관객 조사에서 만족도 1위에 올랐다. 올해엔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풍류대장’(JTBC) 우승팀 ‘서도밴드’의 리더 서도(27)가 특유의 감칠맛 나는 보컬로 가세한다.
김성국(52) 단장은 “우리 음악을 표현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믹스드 오케스트라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들의 음악에 ‘조선팝’이란 정체성을 불어넣은 서도 역시 “지금 하는 음악이 후대엔 전통이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첫 리허설을 막 끝마친 뒤였다. ‘변신과 확산’이야말로 전통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두 사람은 확신하는 듯했다.
이번 공연은 김성국 단장이 서도에게 먼저 제안했다. “티브이에서 노래하는 걸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유튜브에서 서도밴드 공연을 죄다 찾아봤지요.” 김 단장은 서도의 보컬을 ‘하이브리드 창법’이라고 표현했다. “귀를 싹 감아내는 흡입력 있는 가창이에요. 판소리에 내재한 다양한 요소와 팝의 가성을 묘하게 뒤섞어 양쪽을 넘나드는 독특한 창법을 구사하더군요.”
서도는 김 단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실은 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열망해온 꿈의 무대’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었다. “대학 1학년 때 만든 곡이 편성이 커서 언젠가 꼭 악단과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가 왔어요.” 그가 프랑스 서부 해안에서 작곡한 ‘바다’란 곡이다. 서도는 이번에 ‘뱃노래’와 ‘이별가’, ‘바다’ 등 세 곡을 협연한다.
전통 음악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한다는 점도 두 사람의 공통분모다. ‘조선팝’이란 용어를 서도가 처음 썼다. “국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퓨전 밴드라고 불리는 게 싫었어요. 판소리가 흥행했던 시대가 조선 후기라서 조선이라고 했고, 팝 음악에 익숙한 세대여서 조선팝이란 용어를 만들었어요.”
‘조선팝 창시자’란 패기만만한 정체성을 내세우는 서도는 어려서부터 동서양 악기들을 두루 익혔고 국악 중학교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국악고 입시에 실패하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은 실용음악과로 진학해 작곡을 전공했다. 지난 2021년 ‘풍류대장’ 우승 이후 서도밴드는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전국을 돌며 공연도 펼쳤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국악을 지켜보던 관객에게 이들은 국악의 새로운 측면과 재미를 들려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악의 확장’을 천착해온 김성국 단장은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엔 음악과 춤, ‘악(樂)과 무(舞)’가 공존했던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꾀하며 국악과 현대무용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했다. 현대무용그룹 ‘류장현과 친구들’의 춤꾼 7명과 협업이 그것이다. 오는 12월엔 대편성 국악관현악에 신시사이저와 전자음향이 합세하는 또 다른 ‘믹스드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친다. 그는 “당대에 즐기는 음악이면 한국적 정서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중에서 후대까지 살아남은 곡은 전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도 또한 여러 분야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엔 현대 무용가 안은미와 ‘만병통치약’을 공연했다. “공간 예술과도 협업해보고 싶어요. 제가 표현하는 음악을 라이브로 페인팅으로 그린다거나 조각가와 함께 하는 작업 같은 거 말이죠.” 올해 안으로 새로운 음반도 낼 계획이다.
‘옛것의 보존’이란 틀을 깨고, 뭔가 다르고 새로운 음악으로 지금, 이 시대의 청중과 함께하려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행로는 같은 방향인 듯하다. 김성국 단장은 “전반기엔 국악관현악 본질에 충실한 공연을 했고, 하반기엔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나는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며 “국악을 단지 옛날 음악으로 보는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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