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재팬(No Japan)’ 구호, 더는 안 먹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도 日 제품 소비 증가

최정석 기자 2023. 9. 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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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노량진수산시장, 손님 많아 줄 서야 돼”
일본 자동차, 주류도 전년 대비 판매·수입 증가
“광우병 사태 학습효과, 불매운동 염증이 원인”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일본 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뉴스1

지난달 24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있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하면서 수산물 상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반일감정으로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정반대였다. 소비자들은 오염수 방류에 부정적 영향을 받기는 커녕 수산물과 일본산 제품 소비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수 방류에 소비자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5일 수산업계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이후 수산물이나 수산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오히려 늘고 있다. 오염수에 대한 공포 탓에 수산물 소비가 위축될 거란 예상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차덕호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회장은 “노량진수산시장에 입점한 점포 10개를 정해 오염수 방류 직전 주말인 8월 19~20일부터 8월 26~27일, 9월 2~3일까지 총 3주간 매출 추이를 확인해봤다”며 “구체적인 숫자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오염수 방류 이후 되려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 회장은 “오염수 방류 이후에는 주말이 되면 시장 2층과 5층에 있는 식당에 손님이 너무 몰려 식당 밖에 줄을 서기까지 한다”며 “보통 9월 중하순이나 10월 가을쯤은 돼야 이렇게 손님이 많아지는데 상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 뒤인 지난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2층에 있는 식당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회 제공

대형마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수산부(해수부)는 지난 3일 오염수 방류 직후인 8월 24~29일동안 대형마트 3사 수산물 매출액이 방류 직전 일주일(8월 17~23일)간 매출액의 103% 수준이라 발표했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음에도 수산물 매출액이 오히려 소폭 증가한 것이다. 해수부는 또 8월 24~25일 대형마트 3사 수산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8.1% 늘었다고 전했다.

오염수 방류에 따른 반일 분위기 조성에도 불구하고 일본산 제품 매출 역시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추세였다. 특히 일본산 자동차의 경우 노 재팬 운동 당시 판매량이 반토막나는 수모를 겪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8월 국내에서 판매된 일본산 자동차(혼다, 도요타, 렉서스)는 총 1만517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527대)에 비해 판매량이 44% 늘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올 봄이나 여름쯤 방류하겠다 공식 발표한 건 지난 1월이다. 오염수 방류가 올해 내내 이슈가 됐다는 뜻이다. 이를 감안하면 오염수 방류 공식화에 따른 반일 감정이 소비 심리에 사실상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맥주, 위스키, 하이볼과 같은 일본산 주류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정보마루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일본산 주류를 한국에 들이며 쓰인 돈은 5074만7000달러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2배(98.5%) 증가한 수준이다. 이 중 위스키 수입액은 209만1000달러에서 504만5000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맥주 수입액도 871만달러에서 2825만3000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지난 2019년 7월 24일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 상가 밀집 지역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 규탄 불매운동 선언 행사'에서 일본산 차량인 렉서스 승용차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지난 2019년 노 재팬 운동 당시 일부 소비자들이 일본산 제품 불매를 강요했던 것에 사람들이 염증을 느낀 탓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유니클로 할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매장에 서있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과 같은 행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소비자들이 깨달으면서 외부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 행위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매를 비롯한 모든 소비행위는 개인의 자유인데 노 재팬 운동 때는 특정 방식의 소비를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있었다”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선진국에서 그런 월권적 간섭 행위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 노 재팬 운동을 계기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산물 소비가 오염수 방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이 교수는 “광우병 사태에서 비롯된 학습효과”라고 말했다. 그는 “광우병 사태가 결국 선동이었던 게 드러나면서 식품 안전에 대해서는 한 쪽 이야기만 들어선 안 된다는 걸 소비자들이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며 “수산물의 경우 오염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양립하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한 결과가 지금처럼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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