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아니라 30년쯤 후퇴했다 [하종강 칼럼]

한겨레 2023. 9. 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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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칼럼]

숨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인 4일 오후 교사들이 국회 앞에서 ‘공교육 멈춤의 날’ 행사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정체성이 같이 모여 있으면 매우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간호사들은 전공을 선택할 때부터 환자 곁에서 살아가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선한 의지의 ‘아우라’ 같은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같은 내용의 강의를 해도 매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직 대통령 중 한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시민단체가 있다. 가끔 행사에 초대받아 가 보면 이마에 ‘착한 사람’이라고 써 붙인 것 같은 인상의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다. 단체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분위기는 마치 공립도서관처럼 고즈넉하고 나도 모르게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문재인 정부 말기 그 단체의 한 지역위원회 초청을 받아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정책의 한계와 개선 방안 등에 관한 강의를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민주노총 위원장 연행 등을 규탄하며 분노하는 한 회원에게 오히려 내가 “그래도 여기는 문재인 정부가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벽돌 한장 쌓는 심정으로 힘을 보태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아닙니까?”라는 말로 위로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현 정부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느냐?”는 마지막 질문에는 “이런 행사를 했다고 잡혀가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의 기대는 한다”고 답하면서 웃었지만, 말하는 강사나 듣고 있는 회원들 모두 마음이 우울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정부가 이 땅에 다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지금까지 구속되거나 압수수색을 받거나 연행돼 조사를 받은 노동자나 활동가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현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닥칠지 모르니 굳게 마음먹고 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학교 밖에서 어렵게 이루어지던 노동교육을 학교 안에서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은 2013년께부터였다. 경기도교육청이 2012년 ‘민주시민’ 과목을 개설하고 그 이듬해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발간해 보급했다. ‘노동’ 단원이 신설된 그 교과서를 다른 지역 학교에서도 널리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교육부에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되고, 교육청에 담당 장학사가 배치되고, 학교에도 담당교사가 배정돼 ‘민주시민’ 교육의 일부로 학교 노동교육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예산이 넉넉하게 뒷받침되지 못해 미흡한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 노동교육을 중시하는 나 같은 사람들의 불만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거나 명칭을 변경하고 지방의회에서 ‘민주시민교육 조례’ 등을 폐지하는 일이 잇달았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학교 노동교육이 하루아침에 10년쯤 뒤로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는 글을 쓴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가 10년이 아니라 30년쯤 후퇴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설립되던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그 무렵 정치인들이 전교조를 비난하며 자주 했던 말이 “왜 교사가 자신을 노동자라고 스스로 비하하는가?”라는 표현이었다. 그 뒤 한동안 한국 사회의 특이한 노동혐오 현상을 설명할 때 그 몰상식한 발언이 자주 인용되곤 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정하면 스스로 비하하는 행위가 된다”고 설명하면 청소년들도 웃었다. 30년도 훨씬 지난 일이어서 까맣게 잊고 살아온 지 꽤 되었다.

우리나라 교사 수가 줄잡아 50만명이라는데 지난 2일 집회에 30만명이 모였다. 단일 직종 노동자들이 이렇게 절반 이상이나 한자리에 모인 장면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도 교사들의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놓고 보수 여당 수석대변인은 “신성한 선생님을 스스로 노동자로 격하시킨 단체가 충분한 책임이 있지 않나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10년이 아니라 30년도 더 후퇴한 느낌이다.

요즘 각종 콜센터에 전화하면, ‘노동자에게 욕설·폭언 등을 하면 산업안전보건법에 저촉되니 삼가고 통화 내용은 녹음된다’는 안내가 먼저 나온다. 교사 역시 중차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노동자’로서 같은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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