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中 주도 ‘일대일로’ 탈퇴 가닥… “보복 방지 고민 중”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서 탈퇴하기로 가닥을 잡은 이탈리아가 중국을 달래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 등 일대일로 탈퇴 결정에 따른 불똥이 자국 기업들에 튀지 않도록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일대일로에서 탈퇴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WSJ는 중국을 방문 중인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외교장관이 일대일로에서 최대한 원활하게 탈퇴하는 동시에 이를 대체할 경제협력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다고 전했다. 타야니 장관은 베이징에서 “일대일로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우리는 경제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중국과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초반인 지난 2013년 발표한 일대일로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거대한 경제권을 만든다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이탈리아는 2019년 주요 7개국(G7) 중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국과 일대일로 사업 협정을 맺었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 결정은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서방은 일대일로 사업을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EU는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WSJ는 진단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서 탈퇴하도록 은근한 압박을 가해왔다.
총리직에 오르기 전부터 일대일로에 비판적이었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7월 백악관 방문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이와 관련해 옵션을 여전히 평가 중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아직 일대일로 탈퇴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탈퇴 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귀도 크로세토 국방장관은 최근 일대일로 참여 결정이 “즉흥적이고 형편없는 행동이었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고 어떻게 일대일로 사업에서 탈퇴하느냐라고 말했다.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서 탈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가 꼽힌다. WSJ는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가 이탈리아에 대한 중국의 주요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물론 이탈리아의 대(對)중국 수출을 늘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9년 일대일로 협정 체결 후 대중국 무역 적자 폭은 오히려 더 확대됐다.
크로세토 장관도 중국의 대이탈리아 수출은 증가했지만, 이탈리아의 대중국 수출은 같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멜로니 총리는 올가을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그때까지 일대일로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정부 당국자들이 전했다.
중국은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회원국으로 남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지만, 이탈리아의 탈퇴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이탈리아 당국자들 역시 중국의 반발 없이 일대일로 협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데 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전직 이탈리아 고위 당국자는 “중국과의 좋은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재치와 품격, 외교적 공손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며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않고도 중국과 더 실익 있는 경제적 관계를 구축한 프랑스, 독일처럼 중국과 관계 맺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 이탈리아 당국자는 “중국 측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조용히 이뤄지길 원한다”며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체면을 잃게 할 것이란 전망에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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