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의 베이징 리포트]홍위병과 매카시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余華)는 2005년 펴낸 장편소설 <형제>에서 문화대혁명기(1966∼1976년) 중국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송범평은 중학교 교사이자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다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작은 마을에까지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시작되자 홍기를 들고 계급투쟁 선봉에 서며 영웅 대접을 받던 그는 지주의 아들이라는 게 알려져 하루 아침에 홍위병들의 공격 대상이 된 뒤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다.
문화대혁명기 중국은 혼돈의 시기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근대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겠다며 농업과 산업 생산 증대를 목표로 추진했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전근대적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자며 문화대혁명을 시작한다. 그 중심에 홍위병이 있었다. 대학생, 심지어 중고등학생들까지 가세해 만들어진 홍위병들은 마오쩌둥 사상을 찬양하며 매일같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부르주아 지식인과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정치인 등을 색출·처단하는 데 앞장선다. 홍색 완장을 찬 홍위병들이 전국을 휩쓸었던 이 시기 중국에서는 숱한 문화재가 파괴되고 최대 20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 홍색 광풍의 시기가 있었다면 1950년대 미국에는 반공산주의 광풍이 몰아쳤던 시기가 있었다. 1950년 2월 공화당 상원의원이던 조지프 매카시가 여성당원 대회에서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된 ‘매카시 선풍’이다. 매카시의 폭탄 발언이 있은 이후 미국에서는 4년여에 걸친 공산주의자 색출 작업이 이뤄졌고, 마녀사냥의 공포가 불어닥쳤다. 매카시 선풍은 1954년 12월 매카시가 ‘반미활동위원회’ 위원장에서 해임되면서 일단락 됐지만 미국 사회에 남긴 상처는 작지 않았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21세기 한국 사회에 매카시와 홍위병의 망령이 동시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기시감이 든다. 무턱대고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이는 정치인들이 매카시를 연상시킨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기에 바쁜 보수 언론은 홍위병을 연상시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는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작곡가 정율성의 행적을 지적하며 광주시가 2018년부터 추진해 온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문제 삼았다. 또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전력을 문제 삼아 학교 내 흉상 이전을 결정하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보수 언론은 ‘단독’ 딱지를 붙여가며 그들의 지난 행적에 관한 기사를 쏟아낸다. 정치권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고 좌표를 붙이면 보수 언론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형국이다.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던 홍범도 장군이 하루 아침에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논란의 중심에 서는 모습에서는 위화의 소설 속 송범평의 모습까지 묘하게 오버랩된다. 홍위병의 광기와 매카시즘은 전혀 다른 곳을 겨냥했지만 사회에 극심한 공포와 분열의 상처를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홍위병과 매카시의 망령을 걷어내야 할 때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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