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화성에서 온 사나이' 뉴욕 양키스 제이선 도밍게스

이창섭 2023. 9. 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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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선 도밍게스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뉴욕 양키스가 쓰러졌다.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은 사실상 좌절됐다. '팬그래프닷컴' 기준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0.4%다. 이 정도면 자력으로 올라서는 건 불가능하다.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야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양키스가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한 건 2016년이 마지막이다. 그 해 84승78패를 기록하면서 지구 4위에 그쳤다. 당시 양키스는 트레이드 마감시한 때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을 비롯해 앤드류 밀러와 이반 노바, 카를로스 벨트란 등을 트레이드했다. 양키스가 마감시한을 앞두고 선수를 넘기는 셀러가 된 건 매우 어색한 광경이었다.

7년 만의 포스트시즌 탈락이 유력한 양키스의 남은 시즌 목표는 분명하다. 30년 연속 5할 승률 기록을 이어가는 것과 지구 최하위 수모는 벗어나는 것이다. 최고의 시즌을 만드는 건 실패했지만, 그래도 최악의 시즌은 피해야 한다.

양키스는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기존 선수들을 정리하면서 유망주들을 승격시켰다. 그러면서 지난 토요일(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리즈 2차전에서는 선발 라인업에 신인 야수들만 5명을 내보냈다(제이선 도밍게스, 앤서니 볼피, 오스틴 웰스, 에버슨 페레이라, 오스왈드 페라자). 양키스가 이러한 라인업을 구성한 건 1990년 7월 28일에 있었다(오스카 아조카, 케빈 매스, 짐 레이리츠, 브라이언 도셋, 디온 샌더스).

신인들이 공격을 주도한 휴스턴과의 3연전, 양키스는 시리즈 스윕에 성공했다. 양키스가 휴스턴과의 시리즈를 모두 승리한 건 2013년 9월 이후 처음이다. 2013년 휴스턴은 3년 연속 100패를 당하면서 암흑기에 빠져 있던 팀이었다. 휴스턴이 강팀의 반열에 올라선 이후에는 양키스가 휴스턴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적이 드물었다.

시즌 마무리를 잘해야 하는 상황에서 휴스턴에게 시리즈 완승을 거둔 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신인들이 휴스턴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점이 큰 수확이다. 이 가운데 휴스턴에게 일격을 가한 제이선 도밍게스(20)는 가장 눈길을 끌었다.

도밍게스는 입단할 때부터 특급 유망주였다. 2019년 7월, 양키스는 16세 도밍게스에게 계약금 510만 달러를 안겨줬다. 양키스 역사상 아마추어 계약 최고액이었다.

당시 양키스는 배당된 보너스풀이 539만8300달러였다. 아마추어 계약은 분산 투자로 리스크를 낮추는 게 일반적인데, 양키스는 도밍게스에게만 보너스풀의 약 95%를 집중 투자했다. 양키스가 도밍게스에게 얼마나 확신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도밍게스 계약을 주관한 인물은 도니 로랜드 국제 스카우팅 부서장이다. 로랜드는 도밍게스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팀 스카우트들에게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로랜드는 도밍게스의 재능이 독보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비교 대상으로 마이크 트라웃이 언급됐을 때도 "나는 그가 누군가를 쫓기보다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너스풀을 도밍게스 한 명에게 올인한 것도 "정말 쉬운 결정이었다"고 전했다.

▲ 작년 퓨처스게임에서 홈런을 친 도밍게스

도밍게스도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것이 타고난 운명이었다. 도밍게스의 이름 제이선은 아버지 펠릭스 도밍게스가 지었다. 엄청난 양키스팬이었던 아버지는 아들 이름을 제이슨 지암비의 이름에서 따왔다. 지암비는 메이저리그 통산 440홈런을 때려낸 타자다(도밍게스는 Jasson, 지암비는 Jason으로 철자는 다르다). 아버지를 따라 야구를 봤던 도밍게스도 자연스럽게 양키스 야구를 접하면서 자랐다.

한편, 도밍게스는 4일 '폭탄 발언'을 했다. 인터뷰를 통해 "데이빗 오티스와 매니 라미레스를 좋아했다"고 밝힌 것. 오티스와 라미레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대표한 선수들이다. 두 선수가 뛰었던 시절의 보스턴은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렸고, 이 과정에서 양키스와 수차례 얽히고설켰다. 양키스를 응원하면서 보스턴의 레전드를 동경했다는 건 다소 이해하기 힘들지만, 도밍게스가 태어난 도미니카공화국 에스페란사는 오티스가 자란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에스페란사 주민들은 대부분 보스턴이 첫 번째 팀이다.

예사롭지 않은 인터뷰 스킬을 뽐낸 도밍게스는 지난해 19세 나이로 상위싱글A를 졸업했다. 올해 스프링캠프에서도 11경기 22타수10안타(0.455) 4홈런 9타점을 기록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정규시즌 더블A 성적은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109경기 타율 0.254 15홈런 37도루) 양키스는 도밍게스가 트리플A에서 9경기 31타수 13안타(타율 0.419)로 폭주하자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올렸다.

도밍게스는 20세206일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1984년 스탄 하비에르(20세97일) 이후 가장 어린 양키스 야수였다. 트리플A에서 등번호 7번을 달았던 도밍게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등번호 89번을 받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쓰던 등번호였다. 참고로 양키스는 한 자릿 수 등번호가 모두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양키스의 한 자릿수 영구 결번

1. 빌리 마틴

2. 데릭 지터

3. 베이브 루스

4. 루 게릭

5. 조 디마지오

6. 조 토레

7. 미키 맨틀

8. 요기 베라 & 빌 디키

9. 로저 매리스

도밍게스는 지난 금요일 휴스턴과의 시리즈 1차전에서 5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다. 첫 타석에서 초구 커브를 그냥 지켜보더니, 그 다음 비슷한 코스로 들어온 포심 패스트볼을 그대로 밀어쳐서 좌측 담장 밖으로 날렸다. 도밍게스 이전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신고한 양키스 타자는 2016년 애런 저지가 있었다.

도밍게스는 데뷔 첫 홈런을 예비 명예의 전당 투수 저스틴 벌랜더에게서 뺏어냈다. 참고로 벌랜더는 2006년 6월 2일에 데뷔 후 처음으로 양키스 타자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그 타자는 도밍게스와 이름을 공유한 제이슨 지암비였다.

도밍게스는 다음 날부터 타순이 3번으로 올라왔다. 저지 바로 뒤에 들어섰다. 도밍게스는 시리즈 3차전에서 또 한 번 존재감을 발휘했다. 저지가 잘못된 볼판정에 의해 삼진으로 물러난 다음 타석에서 역전 투런포를 터뜨렸다. 도밍게스의 홈런으로 양키스는 3-1 리드를 잡았고, 시리즈 스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저지가 침묵한 경기에서도 충분한 점수를 뽑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경기였고, 그 역할을 도밍게스가 해준 점이 고무적이었다.

▲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 앤디 페티트 (왼쪽부터)

양키스가 지구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한 건 1990년이다. 그 해 양키스는 우울했지만, 드래프트에서 위로를 해주는 선수들이 나타났다. 22라운더 앤디 페티트, 24라운더 호르헤 포사다였다. 또한 단돈 2000달러에 파나마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도 데리고 왔다.

양키스가 5할 승률에 실패한 시즌은 1992년이다. 그 해 양키스는 체면을 구겼지만, 드래프트에서 구세주가 등장했다. 전체 6순위 데릭 지터였다. 지터는 앞서 입단한 페티트, 포사다, 리베라와 함께 '코어4'로 불리며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5회를 이끌었다.

올해 양키스는 또 한 번 초라해졌다. 하지만 남은 시즌 희망을 키워줄 수 있는 선수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밍게스가 있다. 도밍게스의 힘찬 출발이 양키스를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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