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사태 재발 막으려면 거래소 가상자산 따로 보관해야” 한국 진출 선언한 세계 최대 가상자산 수탁업체 ‘비트고’
세계 최대 가상자산 수탁업체인 ‘비트고(BitGo)’가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가상자산 포럼 행사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KBW) 2023’에서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한 하나은행과 함께 국내 합작법인(JV) ‘비트고 코리아(가칭)’를 세우고, 한국 기업과 기관투자자가 사들인 가상화폐와 NFT(대체 불가능 토큰), 실물자산 기반의 증권형 토큰(STO) 같은 가상자산을 보관·관리하는 업무를 맡기로 했다. 한국을 찾은 마이크 벨시(52) 비트고 CEO(최고경영자)는 발표 전날 본지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가상자산 수탁산업이 커질수록 더 많은 기업과 기관이 가상자산에 투자한다”면서 “고객 자금을 멋대로 유용하다가 파산한 FTX 사태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제3기관의 가상자산 수탁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트고가 국내 시장에 뛰어들면서 국내 기업과 기관투자자들의 가상자산 투자 역시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탁액만 33조원, 가상화폐 거래소도 고객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비트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상자산 수탁기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을 거치며 아웃룩(메일 시스템)과 크롬(웹 브라우저), HTTP 2.0(웹 콘텐츠 전송 기술) 등을 개발한 실리콘밸리의 스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마이크 벨시가 창업했다. 벨시 대표는 “2012년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가와 대기업 대표들 부탁으로 대신 사놓은 비트코인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가 개발한 상업용 ‘다중 서명 지갑(Multi-Signature Wallet)’ 기술은 현재 업계 표준처럼 쓰이고 있다. 수탁 플랫폼과 고객용, 비상용 암호키 3개를 만들고서 이 중 2개가 일치하면 전자지갑이 열리는 방식이다.
비트고는 현재 미국·스위스·독일 등 전 세계 50여국에서 1500개 이상 기관을 대상으로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비트스탬프·코빗·불리쉬·게이트.io·크립토닷컴 같은 유명 가상화폐 거래소도 비트고에 가상자산을 보관한다. 매일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약 20%가 비트고의 온체인 전자지갑(핫월렛)을 거쳐 갈 정도다. 오프라인 전자지갑(콜드월렛)에 보관된 가상자산 규모만 현재 기준 250억달러(약 33조원) 상당이다. 벨시 CEO는 “가상화폐 가격 급락으로 평가액이 줄었지만, 보관된 코인 수는 계속 늘고 있다”며 “가상자산 시장이 뜨거웠을 땐 수탁액 규모가 680억달러(약 90조원)에 달했다”고 했다. 지난달 1억달러(약 1300억원) 투자를 추가 유치할 때 평가받은 비트고의 기업가치는 17억5000만달러(약 2조3000억원)다.
◇”FTX 사태 재발 막으려면 거래소 수탁 업무 분리해야”
벨시 대표는 작년 말 터져 가상화폐 시장의 혹한기를 부른 세계 2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 사태가 가상자산 수탁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린 사례라고 강조했다. 거래소인 FTX가 고객의 가상자산도 자체 보관하다 보니 자전거래와 내부자 거래 등 멋대로 고객 투자금을 유용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벨시 CEO는 “실제 FTX 파산 사태에서 유일하게 자본 문제가 없었던 계열사 레저엑스(FTX US)의 경우 2017년부터 비트고에 자산을 보관해왔다”며 “가상자산의 거래와 보관이 분리돼야 투자자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비트고가 한국 진출을 마음먹은 이유 역시 가상자산의 거래와 보관을 나누려 하는 국내 규제 방향에 있다. 작년 12월 한국은행은 ‘암호자산 규제 관련 주요 이슈 및 입법 방향’이란 조사자료를 발표하며 “가상자산거래소의 수탁업무 겸영 시 자산분리 문제와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사업자의 고유재산과 고객 예치금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시장 참여자를 보호할 것을 강조했다. 가상화폐 제공 사업자가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벨시 CEO는 “수탁 사업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더 빠른 규제속도를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기술이나 자산을 이용해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 자산 보관과 보안성에 집중하는 보수적인 접근방식을 선호했고, 이 방식이 무사고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비트고는 10년째 보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당 2억 5000만 달러(약 3300억원)를 보상해주는 로이드 손해보험에도 가입돼 있다.
앞으로 설립될 비트고 한국법인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등을 마친 뒤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개시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투자규모나 하나은행과의 합작법인 지분 구조는 밝히지 않았지만, 최대주주는 비트고가 맡기로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서 불법 숙박업 혐의, 문다혜 검찰 송치
- ‘한동훈’ 이름으로 尹 비난 글 올린 작성자, 유튜버에 고발당해
- “노숙자 시절, 책 선물해준 은인 찾아요”… 베스트셀러 작가의 사연
- Tteokbokki festival kicks off in Korea’s gochujang hub
- 尹 대통령, 페루 도착...APEC 정상회의 일정 시작
- 男아이돌, 사생팬에 폭행당해…차량 위치추적기도 발견
- ‘성남 야탑역 살인예고글’ 게시자 검거…”익명 사이트 홍보 자작극”
- “단속 안 걸려” 환전 앱 활용한 70억대 ‘불법 홀덤도박장’ 적발
- KAIST 4족 로봇, 마라톤 풀코스 뛴다
- “무보수로 주 80시간 일할 초고지능 인재 찾아요” 머스크 정부효율부 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