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새만금… 몰염치 끝 어딘가[시평]
민주당 제 식구 감싸기 되풀이
참사 대응 여당도 오십보백보
법조계 카르텔은 언급도 없어
공정 설명하는 ‘무지의 장막’
선거에 임하는 정치권에 교훈
내로남불 아닌 역지사지 절박
이제 ‘내로남불’이란 단어는 일상적인 말이 돼 버렸다. 내 편은 항상 옳고 상대는 항상 틀렸다는 편협함이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다. 일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 편인지 여부가 선악의 판단 근거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에서 논리와 토론을 통한 합의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덕분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은 거의 잊어져 간다. 어떠한 결정이 공정한지를 판별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나와 상대의 처지가 바뀌었을 때 똑같은 선택을 하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거대 양당은 현재의 여야 입장이 바뀐다 해도 현재와 같은 주장을 할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 문제를 야기한 우리 당 국회의원이 타당 소속이어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할 것인지 자문(自問)해 보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당들은 공정하지 않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김남국 의원에 대해 제명을 권고했다. 그런데 이후 절차인 국회 윤리특위 소위원회에서는 제명안을 부결시켰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 각 3인으로 구성된 회의에서 4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 소속 의원 3명이 모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부결된 것이다. 해당 민주당 의원들은 김 의원이 차기 총선 출마 포기를 선언한 것을, ‘당선 가능성이 있는데도 의원직을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한 것으로 간주한 모양이다. 비난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민주당의 제 식구 감싸기다.
공정하지 못함은 국민의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다수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사고에 대해 국민의힘이 야당이었다면 중앙정부의 책임을 어떻게 물었을지 궁금하다. 지금처럼 고위공직자들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것인지, 아니면 장관 사퇴를 요구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심지어 난리가 난 새만금잼버리 사태에 대해서도 양당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을 보면서 정치인의 몰염치에 국민은 또 한 번 고개를 돌린다.
대통령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권 카르텔과 부패 카르텔을 혁파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용역과 관련된 전관예우 문제가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 가장 뿌리 깊은 전관예우의 폐해는 법조계에서 자행되고 있다. 이미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차례 밝혀진 것처럼, 고위직 판·검사들은 은퇴하고 변호사가 되면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버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관예우의 관례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처럼 고소득을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변호사법, 공직자윤리법, 청탁금지법 등 제도적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관예우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법조계 카르텔로 인해 국민의 사법(司法) 불신은 심각하다. 가장 뿌리 깊은 이득 카르텔임에도 수능 출제의 카르텔까지 발본색원하겠다는 대통령은 법조계 카르텔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어떻게 공정함을 이룰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존 롤스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무지의 상태란 가상적인 상황인데, 구성원들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규칙을 정하게 되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가난한 사람을 얼마나 도와야 하는지를 정할 때 구성원들이 자신이 가난한지 아닌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라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을 대비해서 국가 지원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약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상황에서 공정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 롤스의 설명이다.
롤스가 말하는 무지의 상태는 가상의 조건이다. 그러나 선거를 거쳐 권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당들은 무지의 상태에 비견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즉, 여당은 앞으로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신중한 태도가 요구된다. 여당은 권력이 독점되는 게 아니란 관점에서 권력 사용에 신중하고, 야당은 국정의 견제자라는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 여당은 협치의 모습을 보일 때, 그리고 야당은 대안 정당의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의 지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제발 남의 정당 일에 품위 없이 비아냥거리지 말고 자기 정당 일이나 제대로 하기 바란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원 1명 ‘몽니’에 주한미군 등 한국 안보에도 구멍…美軍 장성 301명 인사 막혀
- 서수남 “아내, 빚 17억 남기고 잠적…큰딸은 교통사고로 사망”
- ‘군필’은 왕위의 필수 조건… 소총 들고 진흙탕 뒹구는 공주들[Global Window]
- ‘화산 분출하듯’…땅이 아니라 하늘로 뻗는 번개 발견
- ‘이럴 수가’…러시아인 추정 남성, 우크라이나 소년 다리 위에서 내던져
- 임신 축하 비행 중 경비행기 추락…조종사 참변
- “계약서에 명시됐나?”…이승기 ‘교민 무시’ 논란의 핵심
- 옛 여친 15시간 감금하고 유사 성폭행한 30대 “징역 5년 부당” 항소
- 동생 죽자 20년만에 나타난 조카, 보험금 2억·유산 모두 가져가
- 20만 구독 한국 유튜버 “일본이 한글 보급에 앞장서” 망언..“한글은 세종이 멍청한 백성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