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포 스릴러가 실화이자 일상인 현실이라니('타겟')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영화는 도시를 조망하며 곳곳에서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는 중고거래를 여러 개의 창을 띄워 보여주며 시작한다. 언젠가부터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앱을 통해 직접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이 일상이 됐다. 버릴 물건을 중고로 파니 자원 활용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소비라고 여겨지는 중고거래. 하지만 박희곤 감독의 영화 <타겟>을 보고 나면 이 합리적이고 편리한 거래에도 무시무시한 허점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는 그 앱 버튼을 누르는 일이 꺼려지지 않을까 싶다.
세탁기가 고장 나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세탁기를 구매한 수현(신혜선)은 아마도 자신에게 이토록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게다. 택배로 받은 세탁기가 고장 났다는 걸 알게 된 수현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세탁기를 판매한 자를 찾아내고, 그가 계속 다른 물건들을 팔고 있는 걸 알고는 '사기꾼이니 거래하지 말라'는 댓글을 곳곳에 남긴다. 결국 그 사기꾼은 수현에게 경고를 하고, 이를 무시하자 수현을 '타겟'으로 삼는다.
도대체 중고 거래 앱 하나로 누군가의 타겟이 된다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또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애매해 보이지만 우린 이미 스마트폰 하나로 누군가의 삶 전체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걸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목도한 바 있다. 수현을 타겟 삼은 범인은 그의 신상을 털더니 그의 일상 하나하나를 무너뜨려 버린다. 끊임없이 음식을 배달시키고, 심지어 '초대남'들을 모아 수현의 집으로 보낸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초대남들은 수현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고 들어오려 하고, 수현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범인은 중고거래를 빙자해 판매자의 집에 방문한 후 그를 살해하고 그 집의 물건들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려 판매한 사기꾼이자 살인자다. 그러니 일상이 파괴되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던 수현은 이제 언제든 그의 집 문 따위는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이 살인자의 존재 앞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집조차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리자 수현은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다. 이 살인자가 요구하는 돈을 부쳐주고 이 일에서 벗어나고픈 욕망마저 느낀다.
모든 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 <타겟>이 보여주는 건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 쉽게 노출되는 개인이 마주하게 되는 공포다. 일상의 안전이란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와 경계가 구분되어야만 유지되는 것이지만, 이 연결된 세상에서 그런 경계는 무시로 무너져버린다. 사적 정보가 노출되고 사적 공간이 침범된다. <타겟>의 일상 공포는 그래서 누군가 내 경계를 넘어옴으로써 생겨나는 경계 침해 공포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그저 상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건 그 공포감을 더 증폭시킨다. 영화는 그래서 전반부에 평이한 연출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래서인지 중반 이후부터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더욱 숨가쁜 스릴러로 느끼게 만든다.
범인을 잡는 시원함보다 영화는 이 충격적 상황의 공포감에 더 집중한다. 신혜선이 연기하는 수현의 모습은, 시원한 반전을 보여주기보다는 어떻게 일상이 파괴된 이가 점점 피폐해져가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찜찜함은 계속 지속된다. 영화가 끝났다고 그 공포의 현실이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극장 밖에서도 수현 같은 피해자는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는 현실이 아닌가.
<타겟>이 끔찍하게 다가오는 건, 이제 공포 스릴러 영화에 가까운 현실이 우리의 일상이 됐다는 걸 실감하게 되면서다. 어디서든 디지털을 매개로 나의 개인정보가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 결과는 이토록 참혹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최근 본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 살벌하게 이 영화가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일상이 공포가 된 현실을 마주하게 하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타겟>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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