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요람’ 오케스트라 이음…“미래 음악가들, ‘잘 차려진 한정식’ 같은 국악관현악 경험”[인터뷰]
3회차 2.5대 1의 경쟁률…단원 60명 선발
연주법, 음악 해석 기본…진로 상담까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연주자는 홀로 빛날 수도 있지만, 함께 했을 때의 감동과 쾌감도 있더라고요. 이음 활동을 통해 앙상블 속에서도 빛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인턴 김다현)
2021년 ‘오케스트라 이음’ 1기로 활동한 김다현(해금). 악단과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억은 선명했다. 그는 “잘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자유롭게 음악하는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며 “한 달의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질 만큼 아쉬웠다”고 말했다. 여름날 함께 한 ‘성장의 기억’은 그를 국립국악관현악단으로 돌아오게 했다. 김다현은 올해 악단의 인턴 단원이 됐다.
‘오케스트라 이음’이 돌아왔다. 어느덧 3년차. 오케스트라 이음은 국악관현악단 연주자를 꿈꾸는 청년 음악인을 발굴, 육성하는 곳이다. 일찌감치 입소문이 났다. 올해 경쟁률은 2.5대 1. ‘이음’을 거쳐간 단원들도 고향을 찾듯 이곳의 문을 다시 두드린다. 3회차 오케스트라에 2번 이상 참여한 단원이 16명이나 된다. 엄격하게 선발된 60여명의 미래 세대 음악가들은 이음과 함께 ‘내일의 비전’을 써내려가고 있다.
‘오케스트라 이음’은 일종의 국악관현악 사관학교다. 이것만으로 온전한 커리큘럼이다. 과정으로 치면 ‘국악관현악 심화반’쯤 된다.
지난 7월부터 두 달간 진행한 프로그램이 알차다. 잘못된 근육 사용으로 생긴 통증 극복을 위한 신체 훈련 워크숍(알렉산터 테크닉)은 물론, 악단의 지도 단원들과 함께 수업을 하며 국악관현악의 모든 것을 배운다. 국악 전공자들의 ‘꿈의 직장’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미리보기 버전’이다.
‘오케스트라 이음’이 특별한 것은 국립국악관현악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소화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만나지 못하는 수준 높은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국악 연주자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올해는 홍민웅 작곡가의 ‘화류동풍’, 도널드 워맥 ‘서광’, 박범훈 ‘가기게’, 최성환 ‘아리랑 환상곡’에 도전(9월 9일·해오름극장)한다.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리 겸 단장은 “대학생에겐 어려워도 음악적 표현과 악상에 대해 마스터할 수 있는 곡을 숙고해 골랐다”며 “특히 올초 신작인 ‘가기게’처럼 뜨끈뜨끈하면서도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상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은 신선함을 만날 수 있는 곡으로 선별했다”고 귀띔했다.
국립국악단관현악단 지도단원들은 미래의 연주자들과 만나며 1인 4역을 해낸다. 같은 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이자, 정답 노트를 적어주는 일타 강사이며, ‘진로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이고, ‘직업병’을 고쳐주는 의사의 역할도 한다.
음악적 역량 강화를 위한 수업은 기본이다. 박경민(대금)·강주희(피리) 지도단원은 “배우들이 연기하기 전 캐릭터를 연구하는 것처럼 (연주자도) 작곡가의 의도와 해석을 분석해 곡에 대한 큰 틀을 잡은 뒤 세부적인 그림을 그려나간다”고 강조했다.
특히 악보가 담지 못한 민속악적 표현을 비롯해 하나의 음으로도 수십 개의 소리를 내는 복잡다단한 음악의 세계를 콕콕 집어 설명해준다. 강주희 단원은 “악보에선 보이지 않는 이면의 해석들을 파악하는 과정을 가진다”며 “그 배움이 관현악을 연주할 때 뿐만 아니라 다른 창작곡을 연주할 때도 적용돼 연주자로 성장의 기회를 만든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이음에선 음악 너머의 것도 함께 배우고 나눈다. 악보를 보는 것부터 연주자로의 제스처와 몸짓, 걸음걸이와 눈빛 등 프로 연주자의 모든 것을 전한다.
박경민 단원은 때때로 ‘명의’로 변신한다. 가끔 점쟁이 같기도 하다. 대금을 든 자세만 봐도 어딘가 아픈지 간파하기 때문이다. 그는 “악기를 들었을 때 어느 한 사람이 어깨가 들리거나 내려가 비주얼적으로 틀어져 있으면 음악적으로 불안정하게 느껴진다”며 “자세부터 트레이닝이 되면 스스로의 음악도 나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국악관현악을 연주하며 배우는 가장 큰 가치는 ‘조화’다. 함께 호흡하며 소리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알게 된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나가 되는 법”(강주희)을 깨우쳐 나간다. 박경민 단원은 “오케스트라 이음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개인 기량이 뛰어나다”며 “그 안에서 나의 소리를 죽이고 누군가를 뒷받침하는 방법과 호흡을 배우며 음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단원들에게도 깊이 와닿는 가르침이다. 이음 1기 출신 김다현은 “처음 만난 단원들과 서로의 소리를 맞춰가야 하는 점이 새삼 인상적이었다”며 “합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의견을 나누고, 서로에게 배울 점도 찾으며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마다 무수히 많은 국악 전공자가 쏟아지지만, 현실은 이들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각 지역마다 악단은 존재하나, 신입 단원들을 뽑는 곳은 많지 않다. 이처럼 빈약한 환경 속에서도 오케스트라 이음은 ‘직업 훈련소’처럼 경쟁력 있는 연주자를 키워냈다. 1994년~2004년생까지, 꿈은 꾸지만 미래는 불안한 청춘들이 이곳에서 길을 찾았다.
오케스트라 이음 1기 출신의 90%는 각 지역 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음을 거쳐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인턴 단원으로 지원해 합격한 참가자도 5명이나 된다. 여 단장은 “미래의 음악가를 발굴해 육성하고, 다시 우리의 연주자로 받아들이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이음을 거쳐간 학생들에게도 이 경험이 값지다. 이음을 거쳐 국립국악관현악단 인턴 단원이 된 송송이(피리)는 “단체의 소속이 아니면 연주 기회가 흔치 않은 관현악을 연주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이음이 그리는 미래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여 단장은 “3년 차가 돼 이음의 노하우는 더 많이 쌓였다”며 “10회 정도 유지되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력과 견줄 만한 오케스트라 이음이 나올 것”이라는 청사진을 그렸다.
“국악관현악은 잘 차려진 한정식이에요. 정성스럽게 만든 여러 음식을 입 안에 넣어 오물오물 씹어야 그 맛을 알죠. 오케스트라 이음를 통해 미래 세대 음악가들에게 관현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경험을 만들어주고자 했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고급 인력들의 멘토링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스며들어 한정식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고, 훌륭한 연주자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여미순)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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