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70개 택배에 ‘프레시백’ 수거하려면 밥 먹을 시간이 어딨어요”
개당 100~200원 프레시백 회수도 업무…“클렌징에 짓눌린 삶”
연휴에도 ‘명절 출근율 75%’에 일해야…“가족 보긴 글렀어요”
(시사저널=이해람 인턴기자)
"탑차 안에서도, 캠프 복귀해서도 프레시백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지난 1일 성남시 분당구에서 만난 쿠팡 택배기사 홍성범(41)씨는 닦아도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1t 탑차 안에 뒤엉킨 프레시백(신선식품 택배 주문 시 사용하는 보냉가방)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이날 10여 차례 탑차 안으로 들어가 매번 5~10분이 걸려 프레시백을 정리했다.
홍씨는 쿠팡 '퀵플레서'다. 퀵플레서는 쿠팡 물류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 직고용된 노동자(쿠팡친구)가 아니다. 퀵플렉스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 즉 특수고용직이다.
퀵플렉스는 주로 1t 탑차를 이용해 쿠팡의 기존 캠프에서 물건을 받아서 배송하는 업무를 한다.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쿠팡친구와 단기 계약직인 쿠팡플렉스의 중간 형태다. 택배 배송은 물론 프레시백 회수도 퀵플레서의 몫이다.
오전 10시 택배 상자로 가득한 탑차를 몰고 배송을 시작하는 홍씨와 이날 하루 동행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차량을 세우면 그의 뜀박질은 시작된다. 이날 홍씨에게 배정된 '1회전(오전)' 물량은 총 210개다. 최소 오후 2시30분까지 배송을 마쳐야 '2회전(오후)' 물량까지 큰 차질 없이 고객 문 앞에 택배 상자를 놓을 수 있다.
그는 끌차 위에 택배 상자를 가득 싣고 서둘러 첫 배송지인 복도식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지만 한낮 기온은 여전히 30도 안팎. 닦아도 흐르는 땀을 뒤로 한 채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택배를 들고 뛰었다. 그는 30m가량의 복도를 뛰어다니며 문 앞에 택배를 놓고 사진을 찍기를 반복했다.
가득했던 택배 상자는 사라졌지만 끌차는 비지 않았다. 회수한 프레시백 때문이다. 배송이 있는 가구의 프레시백은 '일반 회수', 배송이 없는 가구의 프레시백은 '단독 회수' 대상이다. 이날 홍씨가 1회전 동안 회수해야 하는 프레시백은 단독 회수 51건, 일반 회수 31건이었다. 홍씨는 이 프레시백을 재빨리 탑차에 던져놓고 택배 상자로 끌차를 다시 채웠다.
회수한 프레시백의 양도 상당했다. 때문에 기존의 택배들과 뒤엉켜 다음 물량들을 꺼낼 때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날 10여 차례 탑차 안으로 들어가 프레시백을 정리했다. 매번 5~1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프레시백을 정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손길도 조급해 보였다.
"프레시백 회수 대가 높이거나 전담 인력 고용해야"
홍씨는 "퀵플레서에게 프레시백 회수는 큰 부담"이라고 밝혔다. 시간 안에 모든 상품을 배송해야 하는데 프레시백을 수거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기 때문이다. 특히 단독 회수의 경우 택배 배송과 무관한 장소에 일부러 방문해야 하기에 시간이 더 소요된다. 그는 "일반 회수는 개당 100원, 단독 회수는 200원씩 지급되지만 와 닿는 금액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퀵플레서가 프레시백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클렌징' 때문이다. 클렌징은 일정 기준에 못 미칠 경우 기사들의 배송 권역을 박탈하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쿠팡CLS의 제도다. 클렌징을 당하면 해당 배송 구역에 더 이상 배달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4주 동안 3회 이상 프레시백 85%를 회수하지 못하면 클렌징'하는 것이 쿠팡 방침이었다. 하지만 프레시백을 내놓지 않는 소비자들도 상당수 있어 물리적으로 회수율 85%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지속되자 최근 쿠팡은 '일반 회수 기준 주간 60%, 야간 40%'으로 클렌징 기준을 낮췄다. 홍씨는 "클렌징 기준이 완화돼 업무 부담이 많이 줄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시간이 단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됐지만 홍씨는 여전히 어려움을 토로한다. 1회전 배송을 마치고 캠프로 복귀해도 쉴 틈이 없다. 프레시백 안에 들어있는 아이스팩을 버리고 그 안의 각종 생활폐기물 등을 처리하고 다시 차곡차곡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레시백 회수에 대한 대가를 높여주거나 쿠팡이 프레시백 회수 전담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후 2시30분 캠프로 복귀해 프레시백을 정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려 찾은 곳은 야외 주차 공간이었다. 짐을 쌓아 그늘막을 치고 플라스틱 의자 5개, 재떨이가 있는 곳이 캠프 내 퀵플레서의 유일한 휴게 공간이라는 것이 홍씨의 답변이다. 에어컨은 물론 정수기조차 없는 곳이다.
오후 8시까지 신선식품 배송해야…명절 연휴는 언감생심
그는 그 곳에서 연달아 담배 2개비를 피고 다시 2회전 배송을 준비했다. 식사는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홍씨는 "밥 먹을 시간이 어딨어요. 굶었다가 늘 밤에 집에서 폭식하죠"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2회전 물량은 162개. 탑차에 가득 싣고 보니 시간은 벌써 4시를 가리켰다. 그는 더욱 출발을 서둘렀다. 프레시백에 담긴 신선식품을 오후 8시까지 배송을 마쳐야 해서다.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프레시백 배송부터 8시까지 마치고 다시 일반 택배 배송에 나선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가구를 두 번씩 도는 셈이다. 이럴 경우 퇴근이 늦어지는 건 다반사라는 것이 홍씨의 얘기다.
다행히 이날은 오후 7시40분에 물량 배송이 끝났다. 약 11시간 만에 일을 끝마쳤다. 그는 이렇게 주6일을 일한다. 주 평균 업무시간은 대략 70시간이다. 2020년 발표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노동자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다.
이는 2021년 사회적 합의 기구가 정한 기준도 훨씬 웃도는 근무 시간이다. 당시 정한 위탁계약 택배종사자의 '이행 준수 사항'은 '주6일-주60시간 이내'다. 해당 기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오는 10월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6일의 황금연휴가 생겼다. 하지만 홍씨에겐 언감생심과 같은 일이다. 임시공휴일을 차치하더라도 '명절 출근율 75%'를 달성하지 못하면 클렌징될 수 있어서다. 그는 추석연휴 4일 동안 최소 3일은 출근해야 한다. 홍씨는 "이번 명절에도 가족보긴 글렀네요"라며 쓴웃음을 내보였다.
한편, CLS 측은 퀵플렉서에게 과도한 물량을 배정하지 않는다면서 일부 택배기사들의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CLS 관계자는 "퀵플렉서는 개인사업자로서 본인이 일한 만큼 고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면 소속 대리점과 협의해 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며 "위 택배기사의 해당 노선은 월 800만원 이상 수입이 가능한 노선으로, 대리점에 확인 결과 대리점은 해당 퀵플렉서에게 무리한 물량을 배정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럼에도 택배노조는 CLS의 배송 위탁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택배노조의 이러한 허위 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서는 가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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