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헌의 음감] 0에서 1까지, '제로베이스원'이 걷는 길
심상치 않다. 제로베이스원의 인기다. 보이 그룹이 판매고와 무관하게 대중적 인지도는 낮은 2023년의 가요계에서 제로베이스원만큼은 이례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7월 10일 데뷔 앨범 발매와 동시에 케이팝 역사상 최초로 데뷔 앨범 초동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다. 역대 그룹 데뷔 앨범 중 최고 성적이다. 음악 방송 프로그램 다수 1위는 당연하다. 화제성도 뜨겁다. 팝업스토어 앞에는 밤을 새운 긴 케이팝 팬들의 줄이 끊이질 않고, 각종 페스티벌과 행사로부터의 섭외 요청이 쏟아진다.
제로베이스원의 인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전자는 그들을 존재하게 만든 경연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의 전신, '프로듀스' 시리즈다. 후자는 그들의 음악을 완성하는 프로듀싱이다. 두 지점이 제로베이스원을 케이팝 시장에서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가 좌초한 지도 벌써 4년 전이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프로듀스' 시리즈가 케이팝 시장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101명의 연습생이 피라미드 무대에 올라 '국민 프로듀서'에게 첫선을 보였던 충격부터 최종 11명만 남는 서바이벌 경연, 그 결과로 등장한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엑스원의 인기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최근 보이그룹들의 주제 의식은 확신이다. 넘치는 자신감과 활력 넘치는 퍼포먼스, 강한 동료애를 과시한다. 사랑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위험하고 끝내 자신을 망치더라도 모든 것을 무릅쓰고 몸을 던진다. 팬덤과의 관계는 돈독해진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와 화제성은 낮아진다.
제로베이스원은 다르다. '보이즈 플래닛'이 여러 부분에서 '프로듀스' 시리즈의 후속작을 표방한 만큼 그들의 서사도 남다르다. 세상에 어느 아이돌 그룹이 절박하지 않겠냐마는, '프로듀스' 그룹은 더욱 절박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미래가 보장된 재능만 등장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뷔를 기약하지 못하는 연습생, 무명의 쓴맛을 맛본 이들이 방송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거쳐 팀으로 결성, 데뷔하기까지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최종 후보로 선정되어 이름을 올려도 안심할 수 없다. 프로젝트성 그룹은 '끝을 아는 사이'다. 주어진 기간이 끝나면 팀 활동도 끝이 나고, 다시 기획사와 혼자 힘으로 우뚝 서야 한다.
이같은 절박한 감정을 기획사가 풀어낸다. 제로베이스원의 앨범 제목은 'Youth In The Shade'다. '청춘의 찬란함과 그 이면의 불안정함을 담았다'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활기 넘쳤던 최전성기의 워너원, 화려한 비상을 꿈꾸며 팬덤과의 상호교류와 공감을 강조하던 엑스원과 다르다. 제로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의미의 팀 이름처럼 제로베이스원은 조심스럽다. 미지의 세계로부터 많이 달라진 케이팝 보이그룹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불안하다. 그러나 피어나고자 한다. 끝을 알지만 달려 나가야 한다.
타이틀곡 'In Bloom'은 그렇게 제로베이스원의 힘찬 시작을 알린다. 찬란한 아침과 함께 새날을 알리는 도입부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답게 세상을 다 물들여도', '세상을 다 물들여도 영원한 건 없대 / 결국엔 모두 시들 테니'라 노래하는 태래와 건욱의 목소리는 연약하다. 그러나 질주할 이유를 찾은 소년들은 두근대는 심장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아하의 세계적인 히트곡 'Take On Me'의 오마주 리프가 감정을 고조한 다음, 장하오와 성한빈의 힘찬 목소리가 '결말은 변함없대도 난 달려갈게', '모든 게 변해갈 때 내 가장 눈부신 지금 너에게 줄게'라며 확신을 약속한다.
또 하나의 빛나는 곡이 바로 'New Kidz on the Block'이다. 대담하게도 전설적인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제목으로 가져온 이 노래는 UK 개러지 리듬의 레트로한 곡으로 또 다른 형태의 매력을 전달한다. 어려운 고민이나 거대한 세계관은 필요치 않다.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했다는 따끈따끈한 소식과 세련된 음악의 전달이 핵심이다.
보컬 중심의 프로듀싱은 제로베이스원의 음악을 타 그룹과 구분 짓는 중요한 요소다. 제로베이스원의 음악은 아홉 멤버들의 청량한 목소리를 강조하며 리듬이 아닌 선율로 곡을 끌어간다.
'In Bloom'에서 랩 파트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김규빈의 '시작과 끝은 너' 외침과 마지막 후렴 앞의 박건욱, 김지웅, 한유진뿐인데, 그마저도 굉장히 멜로딕하며 리키, 석매튜와 함께 목소리가 곡에서 들려주는 힘이 더 강하다. 장하오와 성한빈, 김태래의 안정감 있는 보컬이 곡의 정점을 안정적으로 장식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복잡한 리듬 위에서 균형을 잘 잡는 'New Kidz on the Block'과 감각적인 R&B 팝 '우주먼지'와 'Our Season', 짧은 러닝타임에도 함께해 달라고 강렬히 요청하는 'Always'까지 아홉 멤버들의 목소리를 듣는 재미가 풍부하다.
고민 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전략. 제로베이스원은 선명한 목표 아래 힘찬 첫 발걸음을 뗐다. 보이그룹의 대중성 약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청률 저하 등 여러 악재에도 출발이 좋다. 제로부터 시작해 완전한 하나의 자리에 도전하는 제로베이스원이 과연 케이팝 시장을 뒤흔들었던 '프로듀스' 시리즈 선배 그룹들의 아성을 넘볼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 zener1218@gmail.com
<사진=디스패치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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