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⓶] 봉준호 키드 유재선 감독이 창조해낸 섬뜩한 일상의 공포
어느날 문득, 당신의 잠을 깨울 수 있는 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해 찬사를 받았다. 봉준호 감독 역시 한강다리를 기어오르다 뚝 떨어진 괴생물체를 보고 ‘괴물’을 만들었고, 자신의 과외 경험을 되살려 ‘기생충’을 연출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부에서 일했던 유재선 감독은 스승을 따라 자신의 경험을 영화 ‘잠’에 녹여냈다.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쓴 그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못할 일이 없다’라는 둘 사이의 에피소드까지 영화에 녹여내며 신선한 호러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 어느 날, 옆에 잠든 남편 현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다. "누가 들어왔어"
그날 이후, 현수는 잠들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한다. 냉장고를 열고 생선을 씹어먹는가 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수진을 불안에 떨게 만든다.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는 잠들면 가족들을 해칠까 두려움을 느끼고, 수진은 매일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 수진은 곧 태어날 아이까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갖 노력을 다해본다.
유재선 감독의 ‘잠’은 몽유병을 소재로 일상에 파고드는 섬뜩한 공포의 실상을 리얼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남편이 점차 기이한 행동으로 집안을 파국으로 만드는 이야기를 3장의 구조 속에 배치해 미스터리, 호러, 그리고 초자연적 분위기의 장르로 깔끔하게 연출했다. 남편이 어떤 행동을 벌일지 모르는 예측불가한 상황은 팽팽한 긴장감과 서스펜스로 관객의 심장을 옥죄어 들어온다. 갑자기 사라진 반려견, 바닥에 묻어 있는 피, 아무런 이유없이 얼굴을 긁어대는 남편의 행동 등은 초반에 어떤 이유에서 벌어지는지 모르는 설정으로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1장에서 3장으로 이어질수록 공포의 압박감이 비등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어떠한 이물감이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점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영화 속 시간은 3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그러나 관객은 긴 시간을 느낄 겨를이 없다. 3개월의 마지막 날 ‘밤 12시’에 이르기까지 꼼짝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연출력이 수준급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선균, 정유미의 압도적인 연기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아마 영화 ‘잠’을 본 관객들은 잠결에 냉장고 문을 여는 이선균을 오래도록 떠올릴 것이다. 그 옆에서 망연자실해하는 정유미의 표정도 잊혀지지 않는다. ‘잠’은 어느날 문득, 당신의 잠을 깨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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