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디어 동향] 기자 7명 지역신문 압수수색에 美 언론계가 보여준 '행동'
미국 캔자스주 경찰, 지역신문 더레코드 압수수색
'언론자유' 민감한 美, 35개 매체 공동서한에 NYT, WP, CNN 비판 칼럼
지난 5월 서울경찰청 MBC 압수수색엔 한국 언론계 '고요'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미국에서 한 소규모 지역신문이 주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자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유력 매체들이 공개서한을 보내고 비판 칼럼을 쓰는 등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수정헌법 1조에 '언론의 자유'가 명시될 정도로 언론을 향한 공권력 행사에 민감한 미국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현지보도에 따르면, 미국 캔자스주 매리언카운티 지역경찰은 발행 부수 4000부 정도의 가족 소유 지역신문 '더레코드'(The Marion County Record)를 지난달 11일 압수수색했다. 기자들의 컴퓨터와 핸드폰을 뺏어 사실상 신문 발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사무실뿐 아니라 편집인 자택까지 급습해 더레코드 편집인의 모친이자 신문 공동 소유주 조앤 마이어는 압수수색 이튿날 충격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법원과 경찰이 내민 명목상 이유는 '개인정보'다. 한 지역 식당주인의 개인정보를 더레코드가 불법 취득했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판사가 발부한 수색 영장엔 '신원 도용'(identity theft)과 컴퓨터의 '불법 사용'(illegal use)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더레코드는 단순 제보를 받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제보 내용은 식당 주인 '카리 뉴웰'이 15년 전 음주 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무면허 운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더레코드는 페이스북에서 비공개 메시지로 제보를 받았고, 운전면허증 등 개인정보 문서도 담겨 있어 기사화 대신 경찰 신고를 택했다. 밀워키저널 기자,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 등 경험 많은 베테랑 마이어(Meyer) 더레코드 편집인 겸 발행인은 제보를 기사화하지 않은 이유로 “누군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될 문서를 건네준 것”이라고 했다.
제보를 둘러싼 사실관계는 복잡하다. 식당주인 뉴웰은 시의회의 주류 판매권 승인을 앞둬 음주운전에 민감한 상태였다. 해당 내용이 기사화되기 전 시의원 '루스 허벨'이 뉴웰의 음주운전 전력을 지역 담당관에 폭로하자 뉴웰은 더레코드와 정치인의 '밀약'을 주장했다. 뉴웰은 지난달 7일 주류 판매권 승인을 위한 시의회 연설에서 허벨 의원과 더레코드가 불법 취득한 개인정보를 공유했다고 주장했지만 허벨은 이를 부인했다. 반면 마이어 더레코드 편집인은 뉴웰과 이혼을 앞둔 남편이 차량권 소유를 위해 뉴웰의 음주운전, 무면허 전력을 제보했다고 보고 있다.
확인된 게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 근거 없이 경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하자 현지언론은 공격적인 보도를 일삼은 더레코드에 대한 경찰의 '압박'이라고 비판했다. 마이어 편집인이 기디언 코디 매리언카운티 경찰서장의 각종 위법 행위를 조사 중이었기 때문이다. 취재 내용 중엔 코디 서장이 성추행 혐의로 이전 직장을 떠났다는 의혹도 있다. 코디 서장은 압수수색 후 공개 입장을 내고 수사 절차가 마무리되면 압수수색 정당성이 입증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 7명에 불과한 작은 지역신문에 가해진 공권력에 미 언론계 다수가 들고 일어났다는 게 주목 지점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언론의 자유'가 명시돼 있을 정도로 언론사를 향한 압수수색은 미국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35개 이상 매체가 속한 '언론 자유를 위한 기자 위원회'(The Reporters Committee for Freedom of the Press)는 지난달 13일 코디 서장에 “압수수색은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취재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압수한 물품을 언론사에 돌려주고 행위에 대한 독립 감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유력 언론도 경찰을 비판하는 칼럼을 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마이어 편집인을 직접 인터뷰했다.
CNN은 지난달 17일 기자 칼럼에서 “'뉴스수집'(newsgathering)에 대한 공격(intrusion)이다. 미국의 가장 깊은 가치 중 하나인 '알 권리'를 심각하게 건드리기 때문에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며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CNN과 인터뷰에서 캔자스 주 압수수색이 바이든 행정부에 '많은 우려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공개된 정보로 봤을 때 신문이 잘못한 흔적은 없다”고 했다.
NYT는 지난달 20일 그레고리 P. 마가리안 워싱턴 법과대학 교수 칼럼에서 “2000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이 마을의 경찰은 더레코드를 뻔뻔스럽게(brazenly) 급습했다”며 “당국이 신문사 사무실과 출판사 자택을 급습하고 경찰이 기자들의 컴퓨터와 전화기를 압수하는 일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이야기처럼 들린다. (중략) 이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문사에 막대한 법적 비용을 추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한국도 경찰의 언론사 압수수색 사례가 있다. 지난 5월 서울경찰청 반부패부가 임아무개 MBC 기자의 '한동훈 법무부장관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상암동 MBC 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MBC는 당시 공식 입장을 내고 “개인에 대한 수사를 이유로, 그것도 공인인 국무위원 관련 정보를 이유로 언론기관의 심장인 뉴스룸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과잉수사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유력 언론사들이 정부의 공권력 행사를 비판하는 움직임은 나오지 않았다.
[관련 기사 : MBC “뉴스룸 압수수색 시도, 과잉 표적 수사”]
[관련 기사 : MBC 기자 개인정보유출 혐의에 같은 기자들은 황당해한다]
[관련 기사 : 한동훈 개인정보 유출했다고 MBC기자 아파트 CCTV까지 털었다]
지금까지는 지역신문 압수수색이 경찰의 '패배'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16일 캔자스주 매리언카운티 최고검사는 압수수색을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없으며 수색에서 얻은 모든 기기와 자료를 반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판사는 지난달 29일 압수한 신문의 디지털 사본을 파기하라고 지시했다. 더레코드는 압수수색 이후 첫 지면에서 '압수당했지만 침묵하진 않았다'는 글자크기 200포인트 헤드라인의 기사를 1면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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