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노동의 교감 도예 가장 실용적 아름다움

유승목 기자 2023. 9. 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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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도예展’·‘2023 비엔날레’ 열리는 공예도시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故이건희 회장 소장품 전시
‘에디션 피카소’107점 공개
청주공예비엔날레
57개국 251개팀 3000여점
개막 3일만에 관람객 1만명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지난 1일부터 진행 중인 ‘피카소 도예’ 전시에 나온 도자 에디션 ‘빛나는 부엉이’의 모습. 1955년 작품으로 피카소는 다양한 동물의 상징성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내가 만든 도자기를 모든 시장(市場)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브르타뉴 지방의 마을이나 다른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천재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화가로서 괄목할 성취를 이룬 말년에 이르러 도예에 빠졌다. 20세기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피카소는 평생 회화뿐 아니라 조각, 판화, 무대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무수한 걸작을 남겼는데, 이 위대한 예술 여정의 종착지엔 흙과 불로 빚어내는 원초적인 매력의 도예가 있었던 셈이다. 1948년 본격적으로 도자를 제작하기 시작한 피카소는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30여 종에 달하는 도자기 작품을 남겼다.

사실 피카소의 도자기는 그가 남긴 회화와 비교하면 가치가 높지 않다. 그러나 ‘피카소의 도예’가 갖는 의미는 울림이 크다. 일부 상류층만 누리는 엘리트 예술로서의 미술이 아닌 대중 예술을 추구하며 남긴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의 심미적, 내재적 가치만 주목받고 일상생활에서의 기능은 거세된 시대에서, 피카소는 소박하고 장인정신이 가득한 공방의 예술을 통해 미술의 역할을 재정의한 것이다. 도예를 비롯한 공예야말로,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가장 실용적이고도 창의적이면서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예술이란 점에서다.

세계적인 수집가인 동시에 대중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제품을 고민했던 사업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자신의 컬렉션에 이런 피카소의 도자기를 남겼다. 원본을 복제한 ‘에디션 피카소’(Edition Picasso) 작품이지만 이건희 컬렉션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소개된다. 원본이 아닌데도 112점이나 수집한 것 역시 예술과 생활을 잇고자 했던 피카소의 고민의 값어치를 알아본 게 아닐까란 물음표가 따라붙는 대목이다. 이는 피카소 작고 5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1일부터 청주 미술품수장센터(청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소장품 기획전시 ‘피카소 도예’를 열고, 그가 모은 107점의 도자기 작품을 공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명진 ‘호르투스 탈리스만’.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제공

도예가로서의 피카소를 조명하는 장소로 청주를 고른 것은 생활예술로서 갖는 도예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이보다 적합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청주가 국내에서 가장 알아주는 공예 도시란 점에서다. 청주는 피카소 도예전이 열린 지난 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위치한 문화제조창에서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열고, 세계 57개국 251개 팀의 공예작품 3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청주는 1999년 공예 분야 세계 첫 국제전시인 비엔날레를 개최한 이후 2년마다 도자, 금속, 목칠, 섬유,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망라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강재영 비엔날레 예술감독은 “공예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수천 년간 이어진 직접적이고 육체적인 교감과 공진화의 역사이자 결과물”이라면서 “이 시대의 공예는 인간과 자연, 세계를 포함하는 높은 차원의 의미를 담아 ‘사물’(Objet)로 다시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선 자연과 노동, 예술적 생산이 하나로 일치된 공예의 미적 가치에 주목한다. 회화의 속성, 판화의 특징을 수렴하는 동시에 대중성과 범용성을 구현하려 했던 피카소의 도예 철학과 맥이 닿는 지점이다. 오는 6일부터 서울에서 국제아트페어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개최되며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공예를 주제로 현대미술 거장이 남긴 작품과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한 장소에서 걸리며 공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개막 사흘 만인 지난 3일 현장 관람객이 1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직접 방문해 화제를 낳았다. 김 여사는 개장 첫날 전시장을 찾아 한국적인 정서를 붉은 홍시에 투영한 서도식의 ‘감·甘·感’, 한 마리 새가 오색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순간을 포착한 황란의 ‘비상하는 또 다른 순간’ 등의 작품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 여사는 이 자리에서 “공예는 일상생활 소품 정도로 인식되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조각품까지 아우를 정도로 방대하다”고 밝혔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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