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 털어내자 드러난 얼굴… 시간에 희석된 ‘보편적 불안의 초상’

유승목 기자 2023. 9. 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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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최병진의 밑천은 '강박'과 '콤플렉스'였다.

그가 10년 가까이 천착하고 있는 '초상 연작'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이는 기하학적 구조물이 온통 얼굴과 몸을 감싸고 있다.

이는 최병진을 오랫동안 괴롭힌 강박 증상을 오롯하게 화폭에 드러낸 것이다.

최병진은 여전히 초상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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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진 개인展 ‘불안의 장식’
최병진, 031, 53×41㎝, oil on canvas, 2022. 이화익갤러리 제공

화가 최병진의 밑천은 ‘강박’과 ‘콤플렉스’였다. 그가 10년 가까이 천착하고 있는 ‘초상 연작’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이는 기하학적 구조물이 온통 얼굴과 몸을 감싸고 있다. 시야를 차단하고 숨 쉴 구멍 하나 겨우 뚫려 있는, 마치 가면 같은 무채색의 장식은 외부와의 소통을 가로막고 몸과 마음을 옥죄는 듯하다. 이는 최병진을 오랫동안 괴롭힌 강박 증상을 오롯하게 화폭에 드러낸 것이다. 30대 젊은 작가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해야 했던 몸부림,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부담에서 비롯된 강박을 해소하기 위해 내면세계를 끄집어내 일군 독특한 화풍은 감각적이지만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거리감이 있었다.

최병진은 여전히 초상을 그린다. 얼굴과 몸에 달라붙어 있는 장식도 여전하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인상은 완연히 다르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지난 1일부터 진행 중인 자신의 개인전에 건 스무 점의 초상 작품들은 눈과 코, 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입꼬리는 묘하게 올라간 듯 보이고, 눈빛은 생기가 돈다. 무겁고 날카로웠던 장식의 형상도 부드러워졌고 빨강, 파랑 등 전에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색깔로 칠해졌다. 작품은 전과 달리 차분해지고 정적인 분위기가 도드라진다.

이번 전시엔 ‘불안의 장식 Ornament of uneasiness’이란 제목이 붙었다. 최병진을 지배해 왔던 강박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달라진 화풍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10년의 세월을 거쳐 중년으로 접어들며 강박을 극복한 자리엔 조금 더 일반적이고 만성적인 형태인 불안이 자리 잡았다. 전시를 앞둔 지난달 31일 만난 작가는 “시간이 지나며 강박 증세가 완화되고 희석되면서 보편적으로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불안으로 모티브가 바뀌었다”면서 “이전 작품들이 차갑고 경직된, 얼어붙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불안할 때 곤두서는 느낌으로 더 밝아졌고 얼굴 형상도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병진은 서울 서대문구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면서 작가 밖의 삶을 경험한 게 화풍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상으로 진즉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스스로를 차단해둔 것들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열린 것 같다”면서 “초상 연작은 기본적으론 자화상이라 생각하고 작업에 임하지만, 비단 나의 모습만이 아닌 불안을 겪는 모두의 초상”이라고 했다.

최병진의 작품은 오는 6일 개막하는 국제아트페어 ‘키아프 서울’(Kiaf SEOUL)에도 출품될 예정이다. 전시는 9월 21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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