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수소, 탄소 중립 급한 유럽의 ‘와일드카드’로
프랑스 폐광지대서 대규모 매장지 발견
스페인은 피레네산맥 일대서 시추 추진
영국선 매장 여부 예측 인공지능 개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세운 유럽에서 천연수소가 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와일드카드’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천연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새로운 가스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이런 움직임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천연수소는 온실가스 배출원인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가공 처리하거나 물을 전기분해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이 곧바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천연수소의 청정한 성격과 높은 가치를 상징하는 화이트수소 또는 골드수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스페인이다. 지난 5월 프랑스에서 옛 탄광지대인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역에서 대규모 천연수소(화이트수소) 매장 후보지가 발견됐다. 현재까지는 역대 최대 매장량으로 추정된다.
4600만톤 천연수소 매장 추정
프랑스 로렌대 지질자원연구소 연구진은 전력업체인 프랑세즈 데네르기와 함께 로렌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메탄을 찾던 중 우연히 천연수소를 발견하게 됐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지대에 위치한 이 지역은 탄광지대로 잘 알려진 곳이다. 20년 전 마지막 탄광이 폐쇄됐다.
연구진이 이곳에서 메탄을 찾아나선 것은 로렌 광산 지하의 토양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3700억㎥의 메탄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의 8년치 천연가스 소비량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이어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연구진은 이를 위한 특수 시추장비를 개발한 뒤, 땅속 1천m 이상 깊이의 대수층에서 물에 용해된 가스 농도 측정에 나섰다. 그 결과 지하 600m, 800m 깊이의 석탄층에서 순도 96%의 메탄 가스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수소 가스가 함께 발견됐다. 지하 200m에서의 수소 가스 농도는 0.1%로 대수롭지 않았으나 더 깊이 내려갈수록 수소 농도가 올라가 1100m 지점에선 15%를 넘어섰다.
연구진은 “탄산철, 앙케라이트 같은 광물과 물 분자가 반응해 수소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지역 폐광산 주변 땅에는 이 두 종류의 화합물이 풍부한데, 두 화합물이 접촉하면 산화, 환원이라는 물리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광물이 물 분자를 산소와 수소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지하 1100m에서 발견된 수소는 더 깊은 곳에서 생성된 뒤 올라온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더 아래쪽에는 순도가 더 높은 천연수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진은 시뮬레이션 결과 지하 3000m에서의 수소 농도는 90%가 넘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이 추정이 맞다면 로렌지역에는 4600만톤의 천연수소가 매장돼 있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는 현재 전 세계 수소 연간 생산량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세계 수소 생산량은 연간 9400만톤으로 거의 대부분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것이다.
스페인, 2028년 천연가스 생산 목표
프랑세즈 데네르기는 이미 천연수소 탐사 및 생산 허가를 신청해 놓았다. 이 회사는 로렌 지역의 천연수소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2026년 구축을 목표로 진행 중인 독일 자르-프랑스 동부-룩셈부르크 국경지대를 잇는 유럽 수소운송네트워크에 이 수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리 시앙스포의 미카 메레드 교수는 현지 언론에 “로렌 지역과 함께 알프스, 뉴칼레도니아, 피레네산맥에서도 천연 수소를 탐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프랑스는 앞으로 연간 300만톤의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에선 피레네산맥에서 천연수소를 추출하는 헬리오스 아라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8년 천연수소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1970년대에 석유를 시추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천연 수소의 매장량은 100만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회색수소 생산비의 절반인 1kg당 0.75유로(1085원)의 비용으로 천연수소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에선 지하자원 탐사업체 지테크(Getech)가 앞장서 뛰고 있다. 이 업체는 최근 각 지역의 지질 데이터를 분석해 천연수소 매장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 분석 도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선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에 수소 누출로 생긴 562개의 원형 함몰부가 발견됐다. 함몰부의 크기는100m에서 수km까지 다양하다.
에너지 전환의 ‘와일드카드’ 될까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천연수소를 발견했다는 기록은 수백개에 이른다. 지역도 이미 2014년부터 천연수소 유정을 운영하고 있는 서부 아프리카의 말리를 비롯해 유럽과 미국, 캐나다,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등 거의 세계 전역에 걸쳐 있다.
유럽의 경우 스페인, 독일, 아이슬란드, 코소보, 핀란드, 스웨덴, 폴란드, 세르비아, 노르웨이,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에서 천연수소의 존재가 확인됐다. 아직은 대부분 탐사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미래의 잠재적 자원일 뿐이지만 청정에너지 수요가 커지고 있어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유럽은 2030년까지 연간 2천만톤, 2050년까지 연간 6천만톤의 녹색수소(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수소)를 생산 또는 수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천연수소가 가세한다면 목표 달성이 훨씬 수월해진다. 프랑스는 지난해 4월 국가채굴법에 천연수소를 포함하기로 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페인도 피레네산맥에서 천연수소를 채굴하는 데 필요한 입법 작업을 하고 있다.
전 세계 천연수소 개발자 및 투자자들은 서로간의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2021년 천연수소 정상회의 ‘H-NAT 서밋’을 출범시켰다. H-NAT은 오는 11월27~30일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세번째 행사를 연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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