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출신 금비 “故 터틀맨 생각 많이 나···앞으로도 신나는 음악 할 것” [인터뷰]

허지영 기자 2023. 9.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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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금비 / 사진=GB엔터테인먼트
[서울경제]

“거북이 노래도 ‘뽕댄스’라고 항상 이야기하는데요, 지금 하는 노래도 ‘세미 트로트’예요. 일종의 거북이 연장선인 것 같아요. 밝고, 신나고, 즐거운 노래, 그런 노래를 많이 하고 싶어요.”

인기 그룹 거북이 출신 가수 금비가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신곡은 지난 2010년 발매한 금비의 솔로 데뷔곡 ‘콩닥콩닥’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곡은 당시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인 벅스 트로트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몰았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매일 불러요. 당시 활동을 길게 못 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곡이죠. 제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심신이 많이 변했다고 느꼈는데, ‘국가가 부른다’에 출연하니까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더라고요. 요새 트로트가 붐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곡이라고 해주셔서 리메이크곡으로 준비하게 됐어요.”

가수 금비 / 사진=GB엔터테인먼트

장르는 세미 트로트다. 거북이의 ‘뽕댄스’와 비슷한 결이다. 예나 지금이나 금비는 밝고 신나는 노래, 들으면 즐거운 노래,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지향한다.

“분위기는 거북이의 연장선인 것 같긴 해요. 밝고, 신나는 노래를 할 계획이에요. 무대에 서면 에너지를 느끼거든요. 신나게 노래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흥’이 끝까지 찬다고 해야 하나. 관객과 같이 호흡하면서 시너지 효과도 생기고요. 그럴 때 느껴요. 제가 신나는 노래를 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받아 가는 사람이라는 걸.”

가수 금비 / 사진=GB엔터테인먼트

금비는 지난 십여 년간 굵직한 인생의 굴곡을 건너왔다. 2011년경 거북이가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을 땐 연예계를 떠나 직장인으로 살았다. 2019년쯤에는 무대가 그리워 연예계로 돌아와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불혹의 나이에 결혼해 첫딸까지 품에 안았다.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간이었다.

“가정이 생겨서, 엄마의 역할도 하고, 아내의 역할도 하고, 회사 일도 보고 있어요. 안 그래도 오늘 딸에게 녹음한 걸 들려주며 ‘엄마가 부른 노래야’라고 했는데, 애가 3초 정도 듣더니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왜, 아이들이 좋아하면 노래가 잘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딸에게 ‘네 덕에 잘 되겠다.’ 얘기했어요. 제가 아이 가졌을 때 블랙핑크 영상도 많이 봤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블랙핑크 노래가 나오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흥루아’라고 불러요.”

가수 금비 / 사진=GB엔터테인먼트

2011년쯤 거북이가 사실상 활동을 중단하며 금비에게도 선택의 기로가 찾아왔다. 금비는 연예계를 떠나 ‘평범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개인병원에 취직해 홍보, 직원 관리, 고객 상담 등의 일을 했다. 보컬 트레이너 일도 겸했다. 3개월 수습 당시 받은 월급은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색안경과 편견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금비는 ‘버텨야 한다’는 일념으로 삶에 적응해 나갔다.

“첫 월급을 받고 느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감사하게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좋은 결과가 있었고, 수입에서도 따라주다 보니 또래에 비해 많은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요. 그런데 새로운 사회에서 남들이 하는 것처럼 첫발을 디디다 보니, 월급이 참 적긴 했지만, 그냥 여기에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러다 보니 또 어느새 수입이 조금씩 뒷받침되더라고요.”

직장인으로 살았던 7년여 간의 시간은 금비에게 터닝 포인트였다. 예민하던 성정은 초연하게 가라앉았다.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서도 해방됐다.

“가수 활동만 했을 땐 굉장히 순위에 신경 쓰고, 순위가 마치 내 현재의 위치인 것만 같고, 주변 사람들이 이 순위로 나를 평가하는 것 같고, 노래가 나오면 무조건 잘 돼야 하고...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불안하기도 했고, 가수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어요. 그렇지만 직장 생활을 해 보니 우린 다 똑같은 사람이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그전에는 ‘나 좀 특별한가?’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내가 굉장히 잘못 생각하며 살았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가수 금비 / 사진=GB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잦아들었다. 결론적으로 금비는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맷집을 얻게 됐다. 단단해진 금비는 비로소 일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어떤 일이든 들기면서 재미있게, 이 일을 해서 성공하지 않더라도 이 과정을 걸어온 이유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삶의 질이 굉장히 높아지더라고요. 무슨 일을 하든지 두려움이 없어지고, 비록 지금 이 노래에 대한 결과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실패는 당연한 거죠. 모든 일의 결과가 다 좋을 수가 있을까요. 대신 과정을 통해 얻는 게 많으니까, 모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된 거죠.”

열심히 산 덕에 그에게도 직장인으로의 안정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금비는 2019년, 발라드곡 ‘시간이 기억해’를 발매하며 가수로 다시 돌아왔다. 계기는 무엇일까. 결국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무대에서 관객과 주고받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향수병처럼 금비를 외롭게, 공허하게 했다.

“직장인으로 4~5년 정도 사니까 삶에도 안정기가 찾아오더라고요. 그런데도 되게 공허했어요.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니, 노래가 너무 그립고 하고 싶더라고요. 저는 생각하고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라, 되든 안 되든 해 보자! 해서 곡을 내게 됐어요. 회사도 차리고요.”

가수 금비 / 사진=GB엔터테인먼트

신곡을 낸 그해, 금비는 자신의 이니셜을 딴 GB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설립 초반에는 故 터틀맨 생각을 많이 했다. 2007년 부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곡 작업부터 회사 운영까지 도맡은 그는 금비에게 아직도 든든한 큰오빠다.

“저는 그때 어렸고, 잘 몰랐죠. 한 회사를 운영하며 얼마나 많은 직원을 잘 리드해서 가야 하는지를요. 사실 무엇보다 제일 어려운 게 사람 간의 관계잖아요. 새삼스럽게 많이 터틀맨 오빠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오빠는 더군다나 곡 작업까지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거북이는 금비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다. 그는 지난 2월 TV조선 ‘국가가 부른다’에 출연해 ‘비행기’, ‘빙고’ 등의 무대를 꾸몄다. 한때는 거북이의 노래를 듣지 못할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거북이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된 에너지 넘치는 가수다.

“‘국가가 부른다’는 출산하고 일주일도 안 됐을 때 제의가 들어왔던 프로그램이에요. ‘죄송해요, 저 출산했어요’ 말했지만 촬영 일자를 조율해서 나갔죠, 하하. 또 최근에 레트로 열풍이 불었잖아요. 그럴 땐 또 행사 제의가 많이 들어오기도 했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상황이 안 되어서 못 할 때도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정은 최대한 다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가수 금비 / 사진=GB엔터테인먼트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는 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거북이의 곡을 접할 때마다 신기하고 영광스러운 마음일 따름이라고. 잊지 않고 사랑해 주는 팬과 대중을 위해 금비가 할 일은 앞으로도 관객과 가까이 소통하며 즐거운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아직도 너무 신기한 게,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비행기’, ‘빙고’ 이런 안무를 많이 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영상을 보내줘요. 우리 아들, 딸이 네 노래로 무대를 했다고요.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럽죠. 그리고 우리 팬 분들은 정말, 같이 늙어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제 개인적인 삶도 응원해 주시고요. 되게 든든해요. 가수로서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에요. 앞으로도 꾸준히 음악 활동하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3개월가량 남은 올해를 바라보며, 금비가 가장 먼저 바란 소망은 가족과 주변 사람의 안녕이었다. 노래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다. 그가 거듭 말해 온 것처럼, 굴곡진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얻지 못할 마음의 평안이었다.

“가장 첫 번째는 당연히 당연히 우리 가족 모두가 평안한 것이고요. 그다음에는 우리 회사, 회사에도 더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또 올해 어쨌든 제 노래가 나왔잖아요. 한 분이라도 더 들을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허지영 기자 he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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