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윤은 뒷전, 우리 열정이 먼저!…MV 제작기 담은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저는 이 다큐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뻥 아니고 진짜 걸었습니다."
뮤직비디오 소품으로 쓸 석고 본을 뜨다 말고 세 여성이 손을 맞잡는다. 딱히 누가 잡자고 한 것도 아닌데, 기도하듯 저절로 손을 잡는 이들의 심경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코앞으로 다가온 촬영을 앞두고, "26시간 동안 깨 있고", "하루에 잠 3~4시간 자는" 강행군을 이어온 퀭한 얼굴이 백 마디 말을 하는 탓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쌩 고생을 하면서도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 열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6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뮤직비디오 제작에 뛰어든 20대 여성 하정과 아현, 은하 세 친구의 무모한 도전을 따라 간다.
이들이 무려 '뮤비 조공'에 나선 대상은 2021년 JTBC '싱어게인' 우승을 차지한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이다. 그러나 영화의 시간은 승윤이 유명해지기 한참 전, 소위 '듣보'(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 시절이던 시기를 담는다. 2018년, 대학교 졸업 후 '듣보 인간'으로 살던 하정이 우연히 승윤의 노래에서 큰 위로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노래 '무명성 지구인')'. 인디 가수가 써 내려간, 쉽게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청춘의 가사는 우울에 빠진 하정의 마음을 울리며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흔들기에 이른다. "나, 이 가수랑 한번 작업해 보고 싶어."
기성 뮤직비디오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했던 생각이지만, 충동적인 하정의 꿈은 똑같이 즉흥적인 'INFP 인간' 아현과 은하의 합류로 조금씩 구체화된다. 영화과를 졸업한 세 사람이 택한 전략은 '무작정 만들기'. 방구석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뮤비를 찍은 뒤, 공연장을 찾아가 전달하는 막무가내 전략은 그 어떤 제안보다 효과를 거둔다. 승윤은 '팬과 아티스트'가 아니라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로서 함께 작업해보자며 손을 내밀고,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신곡 '영웅수집가' 뮤비 제작에 뛰어든다. 의상과 소품 제작부터 촬영 콘셉트와 대본 제작, 촬영감독 섭외까지…. 방구석에서 휴대 전화로 찍던 전작과 달리 스케일이 커지며 온갖 과정이 발목을 잡지만, 그만두자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제 와서 다시 겪으라면 자신있게 못 한다고 할"(권하정 감독)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세 사람은 그동안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두려워 외면하던 속마음을 마주 본다. '도대체 이승윤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주위는 물론 스스로도 끝없이 되물었을 질문에 답한 결과다. 농담 조금 보태 말하자면, 가수는 이용당했을 뿐. 이들이 깨달은 건 '내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다. 시키는 사람도, 돈 보태주는 사람도 없는 프로젝트에 열정과 욕심을 보태 평소 하고 싶었던 걸 마음껏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이들은 무엇보다 귀중한 창작자로서의 자아를 손에 넣는다.
좋아하는 일에 진득이 매달려 본 시간은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뮤비 완성 후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세 친구의 답은 각자 다르다. 여전히 자신이 '듣보'라 생각하는 하정은 "실력은 비슷해도 내 색깔과 취향을 누군가 좋아해 주지 않을까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반면 은하는 "좋아하는 걸 꼭 잘할 수 없다는 깨달음과 포기하는 용기"를 배웠다. 그러나 그 역시 좋은 작품을 남긴 덕분에 닿을 수 있던 결론임을 인정한다. 아현은 어떨까. 희망이 곧 긍정이라는 생각을 버렸다. "좌절이 있어야 희망을 생각하고, 슬픔이 있어야 희망을 생각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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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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