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원자폭탄' 만든 美서도 '찬밥 신세'였는데…대반전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 2023. 9. 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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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취급당했던 원전"…美 IRA 등에 업고 '화려한 부활'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원자력발전 르네상스-中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미국 원자력 발전 산업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의 일대기를 다뤘다.


뉴멕시코주는 미국 원자력발전 산업의 산실로 불린다. 1940년대 뉴멕시코주 북부의 로스 앨러모스에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개발됐다. 미국 정부의 지원 속에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가 이끌었던 '맨해튼 계획'의 결과였다. 이 프로젝트는 그간 이론에만 머물렀던 핵분열 연쇄반응을 대형 실험으로 증명했고, 상업용 원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80여년이 흐른 오늘날 뉴멕시코주의 남동부에 위치한 유니스에는 농축우라늄(핵연료) 생산 공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유럽 기업 유렌코가 소유한 유니스 공장은 북미 대륙에서 농축우라늄을 공급하는 유일한 곳이다. 미국 내 다른 농축시설들은 전 세계에 불어닥쳤던 탈(脫)원전 열풍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러시아가 잠자던 전 세계 원전 업계를 깨웠다" 

유렌코는 2년 전만 해도 유니스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생산 용량을 15% 늘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찬밥 신세였던 원전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시 조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신규 원자로 건설,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개발, 원전 관련 공급망 구축 등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탄소 배출이 없고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원전의 친환경성과 경제성(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등 단점을 보완함)에 주목하면서다.

유렌코의 미국 뉴멕시코주 유니스 우라늄 농축 공장. 출처=Photographer Mark Felix, Bloomberg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불거진 에너지 수급 위기는 탈원전을 선언했던 국가들마저 원전 확대로 돌아서게 했다. 원전이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는 동시에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순배출량 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20년 수준에서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영국은 2050년까지 신규 원전을 최대 8기 더 짓고, 원전 발전량 비중을 25%로 3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이를 맡을 영국원자력청(GBN)을 올해 초 출범시켰고, 지난달엔 원자력 기술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프랑스 역시 원전 6기를 건설하고 기존 원자로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핀란드와 캐나다 중국 인도 등도 원전 확대 계획을 선언했다. 탈원전을 추진했던 스웨덴 정부는 향후 20년간 최소 10기의 원자로를 새로 새우겠다고 발표했고, 후쿠시마 사고를 겪었던 일본도 탈원전 기조를 거둬들였다.

그러나 오랜 기간 원전 생태계를 방치했던 대가는 만만찮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동안 미국과 유럽의 원전 프로젝트는 지연되거나 당초 계획된 예산을 초과하는 경우가 급증했다"며 "이로 인해 민간 부문의 투자가 급랭한 상태"라고 전했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영국 힝클리포인트C, 프랑스 플라망빌3 원전을 짓고 있지만 모두 수년 째 공사가 늘어지고 건설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 세계 국가들의 원자로 보유 현황(2022년 기준).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총 436기에 달한다. 출처=스태티스타

美IRA 등 각국 정부 지원 토대로 민간 투자도 되살아나야 

미국 에너지경제금융분석원(IEEFA)의 데이비드 슐리셀 연구원은 "각국 정부 주도로 원전 르네상스 조짐이 일고 있을 뿐"이라며 "최근의 흐름을 제대로 타려면 민간 투자자들의 관심을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에서는 7년 만에 새 원자로(조지아주 보그틀 3호기)가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원전 업계도 마냥 웃지만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동 중인 대형 원전 수는 1990년 무렵 111기로 정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감소해 현재는 93기다.

보그틀 3·4호기는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1979년)를 겪은 미국이 2012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승인한 신규 원자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2016년으로 예정됐던 가동 시기는 비용 문제, 결함 등으로 7년가량 늦어졌다. 보그틀 3·4호기의 건설 비용은 원래 계획된 예산(140억달러)을 두 배 이상 초과한 300억달러로 집계됐다. 미국 원자력기업 웨스팅하우스는 해당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탓에 2017년 파산 신청을 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얼어붙은 원전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작년 제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원전 업계에 대해서도 세액 공제와 대출 보증 등의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기존 원자로에서 생산한 전기는 MWh(메가와트시)당 최대 15달러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고, 신규 원전을 건설할 때는 설비투자액의 30%까지 세액 공제를 해준다.

차세대 SMR 원전의 핵연료인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에도 7억달러가 투자된다. IRA는 원전의 활용처를 다변화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청정수소 부문과 관련해 수소 생산에 쓰일 수 있는 에너지원을 특정하지 않아 향후 핑크수소(원자력으로 만든 수소)에 대한 지원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서다.

유렌코의 유니스 공장 확장 결정은 IRA 혜택을 염두에 둔 행보다. 작년 말 캐나다 최대 우라늄 채굴업체인 카메코(Cameco) 등이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79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도 IRA 특수를 노린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당국은 카메코와 웨스팅하우스의 결합으로 북미 대륙에서 수직적으로 통합된 원전 공급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라이언 레일리 카메코 최고운영책임자는 "이전에는 불청객 취급을 받았던 파티에 초대받고 있는 기분"이라며 "우리는 오랫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순풍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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