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도 데이터 과학자가 필요하다[김재연의 시민을 위한 데이터](4)

2023. 9. 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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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 정부는 대통령 혁신연구위원을 설립하고, 미국 최초로 국가최고데이터과학자(Chief Data Scientist·CDS)를 임명했다. /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의 정부기관은 새로운 문제 해결법을 찾겠다는 목표하에 종종 혁신위원회를 만든다. 디지털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대신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설립했다.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공공 서비스 혁신을 위해 혁신위원회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낡았다. 밀실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여 정기회의를 한다고 기발한 문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문제 정의가 잘못됐다.

앤드류 그로브는 반도체 산업의 종주 기업인 인텔의 전성기를 이끈 경영인이다.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결과 중심 목표관리 경영기법은 인텔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벤처 투자자가 된 존 도어를 통해 구글 등 수많은 후발 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쳤다.

그로브는 1988년에 출판한 책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자기 경영철학의 근본을 ‘두려움’이라고 표현했다. 최고경영자인 그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현장 직원이 아는 것을 매니저가 모르는 것, 매니저가 아는 것을 자신이 모르는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제품의 문제를 고객들 사이에서 상식이 된 후에야 알게 된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

기업도 정부도 모르는 걸 두려워해야

정부도 정보의 사각지대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시민의 불편함을 주민센터 직원이 모르고, 주임이 아는 것을 계장이 모르고, 계장이 아는 것을 구청장이, 시장이, 대통령이 모른다면 바로 그곳에서 정책 실패가 발생한다. 데이터는 정부의 정보 사각지대를 좁혀준다. 데이터가 시민에게서 일선 공무원에게, 중앙정부의 의사결정자에게 흐른다면, 좀더 효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정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위원회가 아니라 역량 강화다. 정부의 역량 강화는 정부 사업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같은 최신 기술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정부 조직 내에 문제를 제대로 알고 풀 줄 아는 사람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데이터를 제대로 쓰는 정부가 되려면 위원회로는 부족하다. 전문가와 전문가들이 일하기 위한 팀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부도 데이터 과학자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터 과학자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2015년 오바마 정부 당시 최초의 미국 국가최고데이터과학자(Chief Data Scientist·CDS)를 임명했다. CDS는 미국 정부의 데이터를 효율적이고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전략, 조직, 체계를 만든다. 백악관을 따라서 노동부 같은 중앙부처, 샌프란시스코시 같은 지방자치단체도 CDS를 뽑기 시작했다. 공공조직 내에서 CDS를 중심으로 하는 데이터 팀이 구축됐다. 이 팀이 정부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정책 결정과 공공 서비스 개선에 활용할 방법을 찾는다. 2019년, 연방정부의 인사관리처는 데이터 과학자를 연방정부의 직군으로 정식 추가했다. 이로써 미국 정부의 데이터 과학자 채용이 더 쉬워졌다.

미국 정부와 일하면서 디지털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단체도 많다. 이들을 시빅 테크 단체라 부른다. 핀 테크(fin tech)가 기술을 써서 소비자가 금융 서비스를 좀더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든다면, 시빅 테크(civic tech)는 기술을 써서 시민이 공공 서비스를 좀더 쉽게 쓸 수 있게 만든다. 이중 대표적인 단체가 내가 일하는 코드 포 아메리카다. 코드 포 아메리카는 제니퍼 폴카가 2009년 창업했고, 현재는 200명 넘는 직원이 일한다. 미국의 연방정부, 주정부와 함께 사회복지, 형사교정, 조세재정에 관한 공공 서비스 경험을 개선한다.

시빅 테크 단체들은 실리콘밸리와 미국 정부의 가교 역할도 한다. 창업자 제니퍼 폴카는 오바마 행정부 때는 백악관에서 과학기술정책부 CTO(차관급)로 1년간 일했다. 이때 그가 백악관 산하의 디지털 서비스청(United States Digital Service·USDS)을 만들었다. USDS는 미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를 민간의 디지털 서비스처럼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나의 사수는 구글에서 14년 일했다. 입사 동기 한명은 트위터에서, 다른 한명은 필라델피아 시정부에서 일했다. 최근 입사한 데이터 과학자는 캐나다의 토론토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다. 미국에서는 민간과 공공 영역, 학계와 실무를 오가며 커리어를 쌓는 데이터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정부는 IT 강국을 넘어 빅데이터, 인공지능 강국을 꿈꾼다. 하지만 공공기관 내의 데이터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미흡하다. 많은 부처, 공공기관, 국책연구소가 자체 수집한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기보다 동향조사를 하기에 급급하다. 동향조사는 박사급 인재의 연구 능력이 필요 없다. 굳이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정부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심지어 사람이 할 일도 아니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을 써서 나쁘지 않은 자동 요약문을 만들 수 있다.

데이터는 전략적 자원이기에

민간에서는 뛰어난 데이터 과학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데이터가 전략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잘 쓰는 조직이 경쟁력을 가진다. 한국의 공공 기관 중 적극적으로 데이터 과학자를 채용하려는 곳은 아직 드물다. 반면 미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데이터 인력을 수용한다. 2012년, 오바마 정부 때 설립된 대통령 혁신연구위원(Presidential Innovation Fellow)이라는 자리는 한국 정부의 흔한 위원회 위원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조직의 목표는 회의를 위한 회의가 아니라 문제 해결이다.

이 프로그램은 민간기업, 비영리단체, 학계의 데이터 과학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의 중간 매니저급 인재를 정부로 초청해 공공 문제에 활용한다. 2012년에 18명을 뽑는데 700명 넘게 지원했고, 2년 뒤에는 43명을 뽑는데 2000명 넘게 지원했다. 2015년에는 대통령의 명에 따라 연방정부의 공식 프로그램이 됐다.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주축이 돼 미국의 연방조달청 산하에 ‘18F’라는 정부기관을 설립했다. 이들은 미국 정부기관에 어떤 디지털 도구를 구입해 어떻게 써야 할지 자문한다.

시장에서는 한 회사의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경쟁사의 제품을 사면 된다. 정책은 쉽지 않다. 데이터는 정부가 필수불가결하고 대체 불가능한 정책을 더 잘 만들 수 있게 하는 열쇠다. 탁상공론만 일삼는 위원회로는 이런 역량이 있는 정부가 탄생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에도 디지털 정부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해낼 줄 아는 데이터 과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보여주신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김재연 코드 포 아메리카 데이터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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