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비빔밥 관계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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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한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지하철, 버스 노선과 같은 안내도나 지도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 관계와 같은 추상적인 것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그래프는 반드시 두 개 이상의 관계항이 존재할 때 성립된다.
비빔밥의 나물들처럼 초록, 노랑, 주황 다양한 색은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속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들에 눈을 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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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한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가장 싫어했던 메뉴는 비빔밥. 주문받아 재빨리 주방으로 돌아와 밥을 담고 고명을 올려 내가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날 집에서는 도저히 같은 맛을 낼 수가 없다는 단골손님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대사의 마음으로 조리 과정을 설명해 주니 그는"이 음식은 Relationship(관계) 그 자체구나"라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 등 다양한 나물과 고명들이 고추장, 참기름과 함께 어우러진 음식이니 말이다. 화룡점정은 밥이다. 흔히 서양인들이 먹는 '인디카'종 쌀과 달리 비빔밥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서만 재배되는 '자포니카' 쌀이 특유의 단맛과 점성으로 찰지게 각각의 재료를 한데 모아주기 때문이다.
권영성은 관계와 그 형성을 그린다. 자세히는 규격화된 도시의 풍경과 그것을 이루는 대상들이 서로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그래프로 환원해 보여준다. 독일의 수학자 오일러가 처음 고안해 냈다는 그래프는 일상의 많은 곳에 적용된다. 지하철, 버스 노선과 같은 안내도나 지도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 관계와 같은 추상적인 것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영성의 작업에 등장하는 그래프는 잘 지어진 '밥'이다. 그래프는 반드시 두 개 이상의 관계항이 존재할 때 성립된다. 역으로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권영성의 작업에 등장하는 그래프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수치나 값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진중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 존치하는 환경에 대한 이해의 표현이자 연결 짓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밥을 지은 다음에는 고명이다. 눈에도 입에도 조화로운 것을 찾아 올려야 하는데 무엇을 더하고 뺄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권영성의 고명은 소박하고 익숙한 일상의 풍경, 도시와 그곳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요소들이다. 각기 다른 목적과 형태로 존재하는 건물들, 강과 산과 같은 자연부터 가로수와 공원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자연 등 단조롭고 다채로운 모든 것이 소재가 된다. 그의 작업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색채이다. 비빔밥의 나물들처럼 초록, 노랑, 주황 다양한 색은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속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들에 눈을 뜨게 한다.
'밥을 먹는다'라는 것은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밥'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다. 때로는 안부를 묻고 알리는 매개가 되기도 하고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을 통해 그야말로 관계 형성의 황금비율을 찾아간다. 권영성의 작업이 특별한 것은 신기할 정도로 섬세한 선과 강렬한 색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정한 간격과 동일한 크기로 분배된 면, 다양하면서도 규격화된 형태를 만들어 내기까지 그가 기울이는 관심과 진중한 태도가 예술과 삶의 '황금비율'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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