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신고에 무방비' 초등교사, 9·4 집단행동에 화력집중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4일 임시 휴업한 학교가 모두 초등학교이고, 연가·병가를 낸 교사의 상당수는 초등학교 소속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초등 교사들이 이번 사태에 특히 분노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잇따라 숨진 교사 대부분이 초등 교사라는 점과 함께 그동안 초등학교 학부모 민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보호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기준 임시 휴업한 학교는 전국 38개교로, 모두 초등학교였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임시 휴업에 동참한 학교가 없었다.
공식 통계가 발표되지 않았으나 연가·병가를 낸 교사의 상당수는 초등 교사일 것으로 교육계는 보고 있다.
부산에서는 초등 교사 1천500여명이, 경남도의 경우 1천300여명의 초등 교사가 연가·병가 등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초등 교사들이 집단행동에 대거 동참한 배경에는 집단행동을 주도한 측이 초등 교사 인터넷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이라는 점이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연이어 발생한 교권 추락 사건의 피해자가 대부분 초등 교사라는 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교사들의 공분 표출의 발단이 됐던 것은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실에서 신규 교사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었다.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 1일 전북 군산에서 각각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 역시 초등 교사들로 확인됐다.
숨진 세 명의 교사에 대한 경찰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교원단체와 유족들은 그들이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거나 동료 교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교육부 직원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의혹을 받은 피해자 역시 모두 초등 교사였다. 해당 직원은 지난해 10월 자녀의 담임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해당 교사가 직위 해제된 후 새 담임 교사에게 '왕의 DNA'를 언급하며 자녀를 지도할 때 지켜야 할 수칙을 메일로 보낸 바 있다.
10년 차 초등 교사 A씨는 "내가 별일이 없는 것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한다"며 "정말로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초등 교사 B씨도 "(교육부 직원 갑질 논란은) '왕의 DNA'라는 용어가 특이해 주목받은 사건이긴 하지만 용어만 빼면 초등 교사들 사이에선 너무도 흔한 일"이라며 "말투만 공손하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을 여러 명 봤다"고 말했다.
초등 교사들은 최근 연달아 터진 교사들의 사망 소식은 교권이 추락하고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 증가한 학교의 현주소라며 교육권을 넘어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교육 당국에 촉구하고 있다.
초등 교사들의 요구가 특히 집중된 분야는 학부모 민원에 대한 대책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다른 학교급보다 학부모에 의한 민원이 잦아지고 심각해졌는데도 그동안 교육 당국이 학부모로부터 교사를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초등 교사들의 시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육활동 침해 사례는 287건이다. 중학교(1천862건), 고등학교(845건)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학부모 등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는 전체 초등학교 교육활동 침해의 29.6%(85건)에 해당한다. 중학교(3.8%), 고등학교(4.5%)보다 높은 수준이다.
초등 교사들 사이에서는 특히 2000년대 들어 아동복지법이 강화되고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된 이후 '정서적 학대 행위'를 빌미로 아동학대 신고 위험성이 커졌고, 학교장에게 아동학대 신고 의무가 부여되면서 직속상관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팽배하다.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역시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교권 침해 학생에게는 1호(학교 봉사)부터 7호(퇴학)까지 시킬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악성 민원 학부모에게는 교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없던 것이 현실이었다.
초등 교사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교육부는 지난달 발표한 '교권 보호 종합방안'에서 학부모 민원 가운데 목적이 정당하지 않거나 법적 의무가 아닌 일을 지속해 강요하는 행위 등을 교권 침해의 한 유형으로 뒤늦게 명시하기로 했다.
아울러 학부모에게도 서면 사과, 재발 방지 서약, 특별 교육 등을 이수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중·고등학교는 입시 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함부로 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초등학교는 그렇지 않다 보니 학부모들이 아동학대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엄청나게 늘었다"며 "아동학대 신고 교원 대신 교육청 소속 변호인이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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