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하는 청년 늘어나는데 금융 이해력은 떨어진다[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
10대 주식계좌 326만개 ‘3년 새 3.7배’
청소년들까지 ‘주식 투자’ 관심 높지만
초·중·고 시절 경제교육 시간은 태부족
20대 금융이해력, 노년층 다음으로 낮아
부모 소득 따라 금융교육 양극화도 심각
선진국 교육과정엔 ‘금융 과목’ 의무화
한국은 가이드라인 그친 데다 이론 중심
현실 상황에 맞는 실전적 내용 가르쳐야
“200만원 투자한 하이브는 4% 손해봤지만 400만원씩 넣은 넷플릭스와 현대자동차가 각각 2%, 2.5%씩 오른 덕분에 수익이 났어요.”
토스가 지난 7월 개최한 청소년 모의투자대회에는 만 7세부터 18세까지 총 15만6000여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이 중 15세 이하가 75%였다. 5일 동안 가상의 1000만원으로 넷플릭스·나이키·코카콜라·현대자동차·하이브 등 국내외 주식 일부에 투자해 수익금 순으로 순위가 매겨졌다.
청소년의 실제 주식 투자도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집계한 ‘2022년 12월 결산 상장법인 개인 소유자’를 보면 국내 상장사 주식이 있는 미성년자는 전체의 5.3%인 75만5670명으로 나타났다.
미성년자가 보유한 주식 계좌도 2019년 88만7000개에서 지난해 상반기 325만8000개로 3년도 안 돼 약 3.7배 늘어났다.
10대들의 투자 관심도는 높아지고 있지만 이들의 투자교육 수요에 맞는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초·중·고교생 각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초·중·고 학생 경제이해력 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생의 45.4%와 고등학생의 51.4%는 “경제교육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초·중·고 교사 대부분(각각 64.9%, 55.7%, 61.8%)도 “학교 내 경제교육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가장 받고 싶은 교육 내용으로 금융상품을 꼽았다(중학생 46.1%·고등학생 52.3%). 2위는 기본 경제원리(중학생 34.4%·고등학생 30.9%)였다.
학창 시절에 부족했던 금융교육은 20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2년에 한 번씩 시행하는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20대(만 18~29세) 점수는 평균 65.8점으로 전체 평균(66.5점)보다 낮았다. 경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30대(69.0점) 점수가 가장 높았고 40대 이후부터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금융교육 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 한국거래소, 서민금융진흥원 등 공공기관뿐 아니라 은행·보험사·증권사 등 각 금융사도 연령별·수준별로 온·오프라인 금융교육을 하고 있다.
예컨대 금감원은 FSS어린이 금융스쿨, 대학 실용금융강좌, 금융사랑방버스 등 세대별 프로그램부터 군 장병, 다문화·북한이탈주민 등 계층별 교육까지 14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처 내에 금융교육을 담당하는 별도 조직(금융교육국)도 있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도 금융소비자정책과의 업무 중 하나로 ‘금융교육에 관한 사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관별 교육 프로그램이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대부분은 일회성인 경우가 많다. 특히 미성년자는 부모의 관심도에 따라 교육을 접하는 시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박형준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금융교육도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이 양질의 금융교육을 받는 ‘양극화 현상’이 있는 만큼 제도권 교육 정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서 소득계층별 점수는 연봉 7000만원 이상인 고소득층(68.7점)의 점수가 300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63.2점)보다 높았다. 학력별 점수도 전문대 포함 대졸 이상(68.7점)이 고졸 미만(59.3점)보다 10점 가까이 높았다.
한국보다 금융이 발달한 해외 주요국은 제도권 금융교육을 꾸준히 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교육을 표준교육과정에 포함해 12개 학년에 걸쳐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교 과정에 독립된 금융 과목이 있고 ‘학교은행(bank at school)’과 같은 상설 체험행사가 마련돼 있다. 대통령 직속의 금융교육자문위원회도 두고 있다.
캐나다도 2004년부터 교육과정에 금융 과목을 의무화했다. 재무부, 금융소비자청 등이 담당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2년부터 초등 사회 교과에 금융교육을 포함했고, 중학생은 금융자산관리, 고등학생은 회계 및 경영원리를 각각 배운다. 영국도 2014년부터 모든 공립 중·고교 사회(시민) 교과에 금융을 포함하고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반면 국내 교육과정의 금융 분야는 경제 교과목의 ‘경제생활과 금융’ 단락이 유일하다. 지난해 교육과정을 개편해 2025년부터 고교 교과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이 신설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무관한 진로선택 과목이다.
장경호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새 교과과정에 신설되는 경제생활과 금융은 수능과 무관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을 것”이라면서 “대학의 선발 자율성을 높여서 예컨대 경제학 등 상경계열 학과는 금융 과목을 선택한 학생에게 가점을 주는 것과 같은 현실적인 방법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금융교육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교육과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0년에 ‘초·중·고 금융교육 표준안’을 제정했고 2020년에 개정해 학교 금융교육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을 제안했다. 고교과정은 의사결정·수입, 지출관리·저축, 투자·신용, 부채관리·보험, 은퇴 설계 등 5개 영역에서 33개 표준안 성취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2020년 개정안은 물론 2010년 제정안도 고교 교과과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금융교육 표준안이 가이드라인 성격에 그치고 강제사항은 아니다 보니 교육당국이 교과과정을 개편할 때 엄밀하게 반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재근 대구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경제 교육과정은 지금까지 경제학원론의 틀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어서 이론·모형 중심적이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학생들이 실전적으로 마주하는 경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금융교육 내용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 대상의 성별·연령·학력·소득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선호 경향이 강한 학생과 청년층에는 즉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위험기피도가 높은 고령층에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손실 가능성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방안을 각각 알려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권정혁·유희곤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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