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뜯어보기] 올해 320% 오른 전고체 테마주를 비교기업에 넣은 퓨릿
두 가지 산정식 모두 발표해 ‘고평가 논란’ 차단 시도
다음 달 코스닥시장에 입성하는 반도체 소재 기업 퓨릿이 최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신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 책정에 대입한 복잡한 계산식이다. 통상 한 가지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계산하는 것과 달리, 퓨릿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각각 적정가를 구해 산술평균을 구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퓨릿이 공모가 산정을 위해 고른 비교기업 중에는 올해 들어 주가가 320%나 오른 ‘전고체 배터리 테마주’ 레이크머티리얼즈가 포함됐는데, 두 가지 산정식을 모두 적용해 객관성을 확보함으로써 ‘몸값 과대평가’ 논란을 사전에 방지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퓨릿은 기업가치 산정을 위해 기업가치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V/EBITDA) 방식과 주가수익비율(PER) 방식으로 각각 적정 주가를 구해 산술평균을 냈다. EV/EBITDA 평가 방식으로 구한 적정가는 1만4665원이며, PER 계산식을 통해 나온 가격은 1만4982원이다. 이 평균값인 1만4824원에 주가 할인율 28~40.5%를 적용해 밴드를 8800~1만700원으로 제시했다.
단순히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눠서 구하는 PER과 달리, EV/EBITDA는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왜곡 위험을 낮추기 위해 많이 쓰는 방식이다.
EV는 시가총액에 순차입금(부채에서 현금을 뺀 값)을 더한 값, 즉 회사를 인수할 때 필요한 돈을 의미한다. EBITDA는 영업이익과 감가상각비를 더한 값이다. 영업활동으로 창출된 현금성 영업이익을 뜻한다. 따라서 EV/EBITDA는 보통 외부에서 빚을 많이 끌어다 사업하는 경우, 혹은 감가상각비가 작을 경우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퓨릿 상장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업이 설비투자(CAPEX)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PER보다는 EBITDA 멀티플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며 “다만 공모주 시장에선 대부분 PER 방식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두 가지 방법을 다 제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퓨릿은 적정 시총을 구하기 위해 4개 기업을 비교기업으로 택했는데, 그중 반도체용 전구체(웨이퍼에 박막을 쌓아 올리는 증착 공정에 사용되는 원료)를 만드는 레이크머티리얼즈가 눈에 띈다. PER 배수가 40배에 육박해 평균치를 20배가 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레이크머티리얼즈는 EV/EBITDA 배수도 29배로 다른 비교기업들(7~12배)에 비해 월등히 높다.
레이크머티리얼즈의 멀티플(배수)이 높은 이유는 올해 들어 전고체 배터리 테마주로 묶이며 주가가 320%나 올랐기 때문이다. 연초 4000원대 초반에서 거래되던 주식이 6월 중순 2만6000원까지 올랐다. 퓨릿이 공모가 산정을 위해 고른 분석일(8월 11일) 무렵엔 거품이 어느 정도 빠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1만7000원대의 높은 주가를 기준값으로 삼을 수 있었다. 연초 가격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퓨릿은 이처럼 테마를 타고 주가가 급등한 회사를 비교기업군에 넣으면서도 EV/EBITDA와 PER 방식을 모두 적용해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두 가지 산정 방식으로 계산한 적정가가 모두 1만4000원대로 별 차이가 없게 나왔다”면서 “설령 고평가된 기업을 비교기업군에 넣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해도, 회사 입장에선 ‘합리적으로 계산했다’며 항변할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상장을 앞두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경우엔 최근 몸값 산정 과정에서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 들어 주가가 399% 오른 레인보우로보틱스를 비교기업군에서 배제한 바 있는데, 퓨릿은 이와 달리 주가가 급등한 기업을 비교기업으로 고르면서도 논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다만 퓨릿 측은 레이크머티리얼즈를 비교기업군에 넣은 게 특이할 것 없는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는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아서 제외한 것이기에 레이크머티리얼즈와는 다르다”며 “단지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해서 (비교기업으로) 못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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