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예언...이재용의 실행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0년 3월 경영복귀를 선언하며 던진 말이다. 그는 2013년 1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도 "10년내 삼성의 일등 제품이 사라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는 20년간 세계 1위를 달렸고 삼성전자의 실적도 양호했지만 이 선대회장은 끊임없이 위기론을 설파했다. 위기론을 입에 달고 살았던 이유는 위기가 왔을 때는 이미 대처하기 늦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 의식은 변화로 이어졌다. 디스플레이 업체 삼성SDI는 세계 1위까지 올랐던 PDP(플랫패널디스플레이) 사업을 접었고, 2차전지로 주력 업종을 전환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 1위 종목이었던 LCD(박막액정디스플레이)를 접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말을 갈아탔다. 이 선대 회장이 사라질 것이라던 1위 사업이 사라졌지만 새 활로를 찾아 성공한 케이스다.
이 선대 회장의 위기론으로부터 10년, 삼성의 진짜 위기는 예상 밖의 곳에서 나타났다. 늘 초격차를 유지하며 세계 1등을 30년간 유지했던 반도체가 위기의 진앙지가 됐다.
1993년 10월 이후 지난 30년 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비메모리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도 반도체의 원조인 인텔을 제치고 2년 연속 매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가장 잘 나갈 때 위기는 찾아온다.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가 그랬다.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수요가 발생하자 미래 먹거리인 R&D(연구개발) 라인을 당장 이익이 되는 양산라인으로 전환해 이익극대화에 올인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고 했는데 그 종자를 배불리는데 사용한 격이다.
지난 30년간 잘됐으니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는 자만심이 화를 불렀다. 진짜 위기는 자만에서 온다 .미래 먹거리를 현재의 이익과 맞바꾸면서 위기의 씨앗을 뿌렸다.
기자는 지난 3월부터 삼성의 전·현직 CEO급(사장급 이상) 인사를 약 20명 만났다. 이들은 하나 같이 최근 7~8년 동안 반도체가 지나치게 자만했다고 평가했다. 그 사이 경쟁자들은 발빠르게 삼성전자를 추격했고 이제는 일부 부문에선 경쟁사가 앞서는 상황까지 왔다.
삼성 반도체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던 초격차 기술력이 사라지니 시장 점유율대로 적자 규모가 커졌다. 식량이 부족할 때 덩치 큰 공룡이 가장 먼저 죽는 것과 같은 꼴이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적자는 계열사(삼성디스플레이, 하만)의 연결 영업이익을 뺀 개별 재무제표 기준으로는 약 7조 6000억원이다. 그 중 반도체의 영업적자는 9조원에 달한다. 하반기도 반도체 업황은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가 사상 첫 연간 적자(개별 기준)를 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저수지에 물이 풍부할 때는 그 바닥에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른다. 가뭄이 들고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면 가라앉아 있던 부실과 무능이 드러난다. 다시 물을 채우기 전에 철저한 내부진단이 필요하다.
실적 악화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무엇을 실행할 것인가를 찾아야 한다. 전문경영인과 총수의 시선은 다르다. 멀리 보고 깊이 볼 수 있는 것은 총수의 몫이다. 전문경영인은 자신의 재임기간의 이익에만 최선을 다한다. 눈앞의 이익이 자신의 안위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도 여기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재용 회장이 2019년 청와대 한 모임에서 "위기 상황일 때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쇄신을 통해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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