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루 돌파 韓 역사 세운 날, 김하성 또 최악 오심 희생양… 이제 김하성이 안 치면 볼이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삼진을 선언하는 심판의 세 번째 스트라이크 콜이 들린다. 김하성(28‧샌디에이고)이 우두커니 타석에 서 심판을 바라본다. 설전이 심하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분명 불만이 있는 표정이다. 억울한 심정을 꾹꾹 누르고 더그아웃으로 향한다. 근래 들어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김하성은 올 시즌 들어 유독 볼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되는 빈도가 높아졌다. 경기 최악의 오심에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잦아졌다. 4일(한국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와 경기에서도 그랬다. 이날 최악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하필 김하성의 타석에서 나왔다.
경기 초반에는 기분이 좋았다. 1회 첫 타석에서 깔끔한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어 타티스 주니어의 타석 때 상대 선발 알렉스 콥의 투구 동작을 완벽히 뺏어 2루로 내달렸다. 포수에게는 기회가 없을 정도의 완벽한 스타트였고, 김하성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2루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즌 30번째 도루. 한국인 선수 역사상 첫 단일 시즌 30도루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샌디에이고도 1회 소토의 투런포, 그리고 보가츠의 적시 2루타로 3점을 뽑아 기세를 살렸다. 하지만 3-0으로 앞선 2회 1사 주자 없는 상황, 김하성에게는 억울한 판정이 나왔다. 첫 타석에서 안타를 맞은 콥은 두 번째 타석에서는 더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김하성도 덩달아 신중하게 공을 골랐다. 풀카운트 승부까지 갔다. 6구와 7구는 파울로 걷어냈다. 그리고 8구째 바깥쪽으로 빠지는 싱커에 김하성은 볼넷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관장한 라이언 윌리스 주심은 삼진을 선언했다. 김하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하지만 판정이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허탈하게 물러서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심이었다. 명백했다. 심판 판정의 정확도를 집계하는 ‘엄파이어 스코어카즈’는 5일(한국시간) 이날 경기 최악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으로 이 장면을 뽑았다. 이 분석은 얼마나 형편없는 콜이었는지, 그리고 경기 상황의 중요도를 종합적으로 따진다. 기계적인 분석 외에도 승리 확률이 얼마나 요동쳤는지 정황도 보는 것이다. 2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임에도 이 콜이 최악으로 뽑혔다는 것은, 김하성의 억울함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이날 윌리스 주심이 콜을 제대로 못한 건 아니었다. 이날 정확도는 95%로 평균을 넘었다. 사람인 이상 이 정도만 돼도 나쁜 수치는 아니다. 김하성이 더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최근의 상황은 주심의 문제는 물론 김하성의 뛰어난 선구안을 상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완전한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완전한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사람이기에 오심은 보더라인 근처의 아슬아슬한 공에서 나온다. 가뜩이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이 빨라지고 변형 패스트볼이 늘어나면서 심판들의 고충도 크다. 즉, 김하성이 오심 희생양이 된다는 건 그만큼 공을 잘 골라낸다는 의미도 된다. “김하성이 안 치면, 김하성이 억울해하면 볼이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는 것이다.
김하성의 향상된 선구안은 통계로도 잘 드러난다. 김하성은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처럼 강한 타구를 펑펑 날리는 선수는 아니다. 대신 끈질긴 승부로 팀에 공헌한다. 유인구에 좀처럼 속지 않는다. 투수들로서는 굉장히 성가신 선수다. 메이저리그 통산 1500승의 명장 밥 멜빈 샌디에이고 감독이 김하성을 1번으로 신뢰하는 건 이유가 있다.
김하성의 올해 체이스 레이트(스트라이크존 바깥의 공에 스윙이 나오는 비율)는 단 19.5%다. 10개의 볼이 있다면, 2개 정도만 손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메이저리그 상위 7% 수준의 엘리트 스코어다.
2021년 김하성의 체이스 레이트는 24.2%, 지난해는 24.9%였다. 올해 이 수치가 확 줄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존 바깥의 공에 콘택트가 되는 경우도 지난해 66.7%에서 올해 72%로 향상됐다. 존 바깥으로 나가는 공에 헛스윙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헛스윙 비율도 마찬가지다. 2021년은 21.6%였다. 김하성은 전형적인 거포가 아니다. 이를 고려하면 조금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9.1%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경력 최저인 17.3%를 기록 중이다. 역시 메이저리그 상위 10%의 엘리트 성적이다.
리드오프로 옮긴 뒤 출루에 중점을 둬서 그런지 지난해보다 전체적인 공격 적극성은 줄었다. 스윙 비율은 첫 2년간 44%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37.8%로 크게 떨어졌다. 특히 초구는 거의 지켜본다. 지난해 초구 스윙 비율은 24.9%였지만, 올해는 19.3%다. 2021년(31.6%)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요약하면 김하성은 더 신중하게 타석에 임하며 공을 보고, 헛스윙을 많이 하지 않으며, 유인구도 잘 참아낸다. 볼넷이 늘어나고 상대 투수를 짜증나게 하는 승부가 많아졌다.
이런 과정들이 모여 최종적인 결과도 좋아졌다. 김하성의 올해 삼진 비율은 18.9%에 불과하다. 반면 볼넷 비율이 12.1%까지 올라왔다. 볼넷 비율도 메이저리그 상위 13%다. 꼭 안타가 아니더라도 출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내보다는 공을 시원하게 부수는 유형의 선수가 많은 샌디에이고에서는 이런 장점이 더 특화돼 빛난다. 펫코파크의 팬들이 김하성의 끈질긴 승부에 박수를 보내는 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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