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일 시민사회 간토대지진 반세기 연대에 ‘빨갱이 딱지’
“윤미향씨가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추도식에 참가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이 간토대지진 100주년에 일본에 아무 요구도 없었다는 게 더 큰 문제 아닌가요?”
오랫동안 ‘자이니치 한국인·조선인’(재일동포)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는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총련이 지난 1일 오후 주최한 ‘간토대진재 조선인 학살 100년 도쿄동포추도모임’에 참석한 데 대해 한국 보수 언론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윤석열 대통령도 사실상 이를 ‘반국가행위’라 규정한 데 대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나카 명예교수는 “도쿄 요코아미초에서 열리는 총련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 모임은 1974년부터 열려온 연례행사”라면서 여기에 참석한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일 시민사회 인사들은 윤 의원이 총련의 추도 모임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는 것은 총련을 중심으로 한 재일 조선인들과 일본 시민사회의 길고 복잡한 ‘연대의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추도 모임의 실무 준비를 맡은 이들은 총련 관계자들과 일본 시민들이 모여 만든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다. 여기에 일본 평화헌법 수호 운동을 주도해 한국 시민사회와 인연이 깊은 일본 최대 평화단체인 ‘포럼 평화·인권·환경’(평화포럼) 등이 후원 단체로 참여했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1972년 5월 “1939~1945년 일본의 전시체제하에서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조선에서 일본으로 강제연행된 조선인의 실태를 구명”하기 위해 총련 관계자들과 일본의 법률가·학자·문화인 등이 연대해 만들었다. 조사단은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 조선인 강제연행자의 유골 등에 대한 조사를 벌여 1992년부터 2007년까지 20권의 자료집을 간행했다. 오키나와에 있던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인 배봉기(1914~1991) 할머니를 1975년 찾아낸 것도 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총련 오키나와 지부 일꾼 김수섭·김현옥 부부였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 나오기 무려 16년 전이다.
도쿄 조사단은 도쿄의 사찰 유텐지(우천사)에 보관돼 있는 한반도 출신 유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11월 결성됐다. 도쿄 남단의 섬 하치조섬에서 이뤄진 조선인 강제연행, 1945년 3월10일 도쿄대공습 당시 조선인 피해자 등과 관련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도쿄 조사단을 이끌던 이일만 사무국장(작고)은 도쿄 대공습으로 숨진 조선인의 수가 전체 피해자의 10분의 1 정도인 ‘1만명’이라는 추정치를 제시하며, 2007년부터 매년 2~3월 추모 행사를 열어왔다. 총련이 주도한 행사지만, 한국 정부 기관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추도사를 보내온 적도 있다.
총련과의 교류 전체를 반국가행위로 단정하면, 2000년대 이후 20여년 동안 이어져온 한국 시민사회의 조선학교 지원 활동 등 한-일 간의 자연스러운 풀뿌리 교류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남북이 분단선으로 갈린 한반도와 달리 일본엔 이러한 구분이 없어, 한국 시민들이 재일동포들의 인권 운동을 지원하면 당사자인 총련 관계자들과 섞이게 된다. 한국 시민단체의 한 활동가는 “총련 접촉을 위해선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사전 접촉 신고를 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엔 통일부가 신고 수리 자체를 거부한다”며 “한·일·재일동포를 아우르는 풀뿌리 운동의 뿌리를 뽑겠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물론 윤 의원이 이날 오전 11시에 열린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추모 행사에 참석한 뒤 총련 행사에 왔으면 좋았겠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시민단체의 한 인사는 “민단은 총련과 달리 간토대지진 희생자 위령제를 적극 개최하지 않았다”면서도 “100주년이라 특별히 행사를 했다는데 윤 의원이 이 행사를 알았다면 참석하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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