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6·25 전사자 금속유품 보존처리 전담하는 학예사
구멍 뚫린 탄통과 반합(휴대용 밥그릇), 녹슨 철모, 휘어진 숟가락···.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품들이 탁자에 놓여 있었다. 지난달 31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금속실. 하얀 가운을 입은 이재성(50) 학예연구사가 “올해 보존 처리를 해야 할 총기류, 철모, 탄통 등 22점을 국방부에서 전달받았다”고 했다.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이 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수습한 유품들이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2020년부터 국방부와 협업해 유해 발굴 감식단이 수습한 유품 중 금속류 보존 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보존처리를 해왔으나, 발굴 지역이 확대되면서 유품이 늘어나 추가 부식과 훼손을 막기 위해 보존처리 중요성이 커졌다. 지난 3년간 1330점에 달하는 금속 유품을 보존 처리했다.
“유품이 전사자의 마지막 순간을 말해줍니다.” 이 학예사는 “특히 고 임병호 일등중사의 구멍 뚫린 수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허리춤에 차는 수통에 총탄 흔적 9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최소 총알 네 발이 관통했다는 증거”라며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했다. 임 일등중사의 유해는 2019년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됐고, 추가 조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1953년 7월 13일 화살머리고지 전투 중 전사했다. 당시 나이 23세. 이 학예사는 “1950년 12월 입대한 그가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정전 협정을 14일 남겨두고 전사한 것이라 안타깝고 숙연해진다”고 했다.
고 송해경 이등중사는 철모에 신원을 확인할 중요한 단서가 남아 있었다. 소속 부대인 제2보병사단 마크와 함께 계급장이 그려져 있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소총에 X선을 투과했더니 탄환 세 발이 장전된 경우도 있었어요. 누군가 총을 쏘려다 탄 걸림이 생겼고, 그 와중에 적이 쏜 총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공은 금속공학.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금속 유물 복원을 책임지는 베테랑 전문가다. 최근엔 강원도 양양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불상이 그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금빛 자태를 되찾았고, 국보 창경궁 자격루에 새겨진 제작자 4명을 추가로 찾아냈다.
전사자 유품 보존처리는 약 6개월이 걸린다. 실체현미경 조사, X선, CT 촬영으로 보존 상태를 파악한 후 표면 이물질 제거, 안정화, 건조, 강화 처리 과정을 밟는다. 그는 “국보와 보물을 다뤄온 문화재 보존 처리 경험과 첨단 기술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했다. 다음달 전쟁기념관에서 지난 3년간 보존처리한 전사자 유품을 공개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그는 “이 유품들이 내 이웃의 것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건하게 작업에 임한다”며 “한 분이라도 더 찾아서 유족에게 온전히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서 예를 갖춰 후손의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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