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를 성조숙증 진단… 일부 병원·한의원 돈벌이 나서
남자아이는 같은 기간 5배 급증
지난해 오모(40)씨의 딸(당시 9세)은 병원을 찾았다가 성조숙증 진단을 받았다. 병원 측에선 오씨에게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아이 키가 안 큰다”고 했다. 결국 오씨 딸은 작년 5월부터 이 병원에서 ‘사춘기 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았다. 성장 주사도 따로 맞고 있다.
성조숙증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폭증하고 있다. 성조숙증은 여아는 만 8세 이전(미만), 남아는 만 9세 이전(미만) 이른 시기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따르면, 성조숙증 치료제인 ‘사춘기 호르몬 억제제(GnRH agonist)’ 처방을 받은 어린이(여아 11세 이하, 남아 12세 이하)는 작년 기준 6만900명이었다. 5년 전인 2017년(2만9700명)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남아는 이 기간 5배 급증했다. 9세 미만 여아와 10세 미만 남아를 놓고 보면 증가 폭이 더 크다. 9세 미만 여아의 경우 성조숙증 환자가 2015년 10만명당 449.7명에서 2020년 1414.7명으로 3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10세 미만 남아는 6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외국에서도 비만 등의 영향으로 성조숙증 인구는 증가 추세”라며 “하지만 성조숙증 진단 폭증은 한국만의 현상”이라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이 연령대 어린이의 성조숙증 발병률은 10만명당 23.3명이었는데, 비슷한 기간 스페인(10만명당 1.1명)보다 무려 20배 높았다. 2010년대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성조숙증 발병률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은 추세는 계속됐다.
심평원은 이것의 주요 원인이 과잉 진료라고 보고 있다. 그 이면엔 정부 정책의 미비점이 있다. 정부는 2003년 관련 고시 개정 때 진단 연령(8~9세 미만)을 1년 넘긴 9세(여아)·10세(남아) 미만 어린이까지는 보험 혜택을 주도록 했다. 진단 연령을 갓 넘겨 병원을 찾은 환자가 몇 개월 차이로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걸 막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부 병원과 한의원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연령의 가장 마지막 시기에 성조숙증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남아의 경우 9세 11개월에 검사를 유도해 진단을 내리는 식이다. 실제 2020년 기준, 성조숙증 남아의 82%가 진단 기준 연령(9세 미만)을 넘긴 9세에 진단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엔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춘기 호르몬 수치도 올라간다”며 “이를 성조숙증으로 둔갑시켜 돈을 버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일부 업체는 “성조숙증 치료제는 키 크는 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조숙증 치료를 하면 되레 키가 전보다 덜 클 수 있어 부모들은 매달 60만~100만원을 주고 별도로 성장호르몬 주사까지 맞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 키는 엄마 책임”이라며 부모를 불안하게 해 멀쩡한 아이에게 성조숙증 치료 주사와 성장 주사까지 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올해 성조숙증 치료 주사제 처방을 ‘선별 집중 심사 항목’으로 지정해 과잉 진료 여부를 조사 중이다.
☞성조숙증
여아는 만 8세 이전(미만), 남아는 만 9세 이전(미만)에 유방 및 고환이 커지는 등의 2차 성징이 빨리 나타나는 질환. 전 세계적으로 성조숙증은 증가 추세지만, 한국처럼 최근 5년 만에 최고 5배가 증가하는 건 ‘과잉 진료’ 탓이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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