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때도 안 멈췄던 수업 ‘파행’… 교사들 “그만큼 절박”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49일째인 4일 전국 교사들이 집단으로 병가(病暇)나 연가(年暇)를 내고 출근하지 않아 곳곳에서 ‘수업 파행’이 빚어졌다. 교사가 없어 단축 수업을 하거나 학급 통합 수업을 한 학교가 속출했다. 전교조가 아닌 일반 교사들의 평일 집단행동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학교 파행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그만큼 절박했다”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초등학교의 상당수 교사가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병가나 연가, 가족 돌봄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부산에선 전체 교사 9369명 중 1634명(17.4%)이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초등학교다. 17개 시도 중 서울, 세종 지역 초등학교에서 ‘우회 파업’에 참여한 교사 숫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경우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적게는 20~30%, 많게는 80~90% 교사가 병가 등을 냈다고 한다.
서울 관악구 한 초등학교 교장은 “(교사) 30여 명 중 절반이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 병가를 낸다고 알리고 안 나왔다”면서 “수업이 제대로 안 되니 본래 6교시인데 4교시로 단축 수업하고 하교시켰다”고 말했다. 평교사 전원이 안 나온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육청은 ‘교육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교육청 직원 850명을 일선 학교에 긴급 파견했다. 이날 학교 전체가 ‘임시 휴업’한 곳은 서울 12곳 등 전국 38교다.
교사들은 정부와 여야가 교권 회복을 위한 법 개정에 착수했는데도 집단행동을 했다. 이에 대해 홍정윤 경기교사노조 사무총장은 “교사들이 잇따라 극단 선택을 할 정도로 교권 침해와 교실 붕괴 실상이 참혹하고 절박한데,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미흡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주말에 아무리 집회를 해도 학부모나 일반 국민이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평일 (집단) 휴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교사들 사이에선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교장 직속 민원대응팀 설치, 수업 방해 학생 배제 등 대책도 추락한 교권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란 의견이 많다. 경기도의 한 초등교사는 “수업 방해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려면 그 학생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교육부 대책에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은 다 빠져있고, 아직 법 개정안도 통과되지 않았다”면서 “결국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느낌이 들고 현실을 바꾸려면 교사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지난 닷새 사이 교사 3명이 잇따라 극단 선택을 한 것도 교사들 분노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에는 경기도 용인의 60대 고교 교사가 학부모에게 고소당한 뒤 극단 선택을 했고,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에는 서울과 전북 군산에서 초등 교사가 사망했다. 서울 용산구의 초등학교 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교사들은 속출하는데 교육부는 제대로 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재량 휴업도 ‘불법’이라고 하니 교사들이 분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교사들 고통은 이해하지만, 평일 무더기 출근 거부는 너무 나아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교사들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는 학부모들도 있지만, 맞벌이 부모 등은 평일 갑자기 임시 휴업이나 단축 수업을 하는 데 대해 불만이 큰 상황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는데도 그동안 요원했던 아동 학대 관련 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고, 교권 추락에 대한 국민들 관심도 많이 커졌다”며 “그런데도 수많은 교사들이 굳이 평일에 집단행동을 한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날 연가·병가를 낸 교사 현황을 당장 집계하지는 않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오늘은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하는 데 집중하겠다”면서도 “(불법행위에 대한)징계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늦게 국회 예결위에서 “(병가·연가를 내고)추모에 참가한 교사에 대한 징계는 검토하지 않겠다. 교사들을 징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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