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주고 운영권 챙긴 ‘中 일대일로 10년’… 23國 파산 위기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3. 9. 5.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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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들, IMF·세계銀 간섭 싫다고
중국 자금 받았다가 혹독한 대가
지난달 22일 시릴 라마포사(오른쪽)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세계 경제·군사 영토 확장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로와 해상 실크로드)’가 7일로 10주년을 맞는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다음 단계로 확장하기 위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다음 달 17일 베이징에서 열면서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30여 국 정상이 참여할 예정이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앞질러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지 3년 후에 일대일로를 선언하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패권)’에 도전장을 냈다.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6개월 만의 전격 발표였다. 이후 10년간 일대일로 참여국은 152국으로 늘어났다. 상하이 푸단대 녹색금융개발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일대일로 관련 중국의 누적 투자액(2022년 기준)은 9620억달러(약 1400조원)에 달한다.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이 얻은 수확은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영향력을 키운 것이다. 파키스탄 카롯 수력발전소(2022년 완공),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만(4단계 건설 내년 완공 예정) 등 일대일로를 내세운 대규모 기반 시설 건설을 주도하며 거점을 확대했다.

반면 ‘차이나 머니’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선물’로 알고 중국 투자를 받아들였다가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 위기에 몰리는 나라가 계속 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명목으로 지급하는 자금에 통상 IMF(국제통화기금)의 약 두 배 수준인 연 5% 금리를 적용한다. 미국 글로벌개발센터(CGD)에 따르면 일대일로 참여국 중 23국이 중국에 대한 고금리 부채 상환 부담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일대일로의 다음 10년이 군사력 확장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은 2일 보고서에서 “중국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빌려주고 기반 시설을 짓고 빚을 갚지 못하면 항구를 군사 기지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일대일로를 군사력 증강의 토대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양인성

일대일로의 구상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중국의 서쪽인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 아프리카·유럽을 육상 철도와 해상(항구)으로 잇고 바다 건너 미국의 ‘턱밑’인 중남미까지 ‘중국 영향권’으로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패권 야욕’이 껄끄러운 미국 등 서방국 국민 사이에 중국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하는 반면, 일대일로의 혜택을 본 국가에선 중국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7월 발표된 퓨리서치 설문 결과 케냐, 나이지리아 등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 자금 유입이 많았던 국가들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각각 23%, 15%에 불과했다. 미국은 83%, 한국은 77%가 부정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그래픽=양인성

일대일로가 개발도상국이란 ‘틈새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이유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한계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대규모 미군 주둔은 비판도 낳았지만, 북한·중국 등 적대국으로부터 한국·일본·대만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면서 폭발적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중남미 국가들처럼 팍스 아메리카나로 피해를 본 나라들도 적지 않다. 1980년대 이들 지역에 외채 위기가 닥치자 미국은 IMF, 세계은행(WB) 등을 지렛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 이식했다.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등은 강제적 민영화와 시장 개방 과정에 양극화와 고용 불안, 에너지 공급난 등 부작용을 심하게 겪으며 국력이 쇠약해졌다. 이런 사례를 본 개발도상국이 ‘내정 불간섭’을 구호로 내건 일대일로의 중국 자금을 환영했다는 것이다.

독재와 부패가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비슷한 이유로 일대일로에 적극적으로 합류했다. 아프리카 일대일로 참여국은 (총 55국 중) 37국에 달한다.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는 동아프리카 지부티(2017년)에 건설됐다. 뉴욕타임스는 “2021년 기준 중국의 해외 자금 대출 규모는 IMF의 60%에 달한다”면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위상을 중국이 잠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대일로 10년의 빛과 그림자는 엇갈리고 있다. 중국의 직접적 자금 지원에 기대지 않고, 기술 협력 등으로 이득을 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대표적인 수혜국으로 꼽힌다. 국가 규모가 비교적 큰 러시아, 카자흐스탄, 브라질 등도 중국으로부터 10억달러(약 1조3200억원) 이상 대규모 기반 시설 건설 프로젝트를 유치하며 일대일로의 승자가 됐다.

반면 잠비아는 중국 국유 은행으로부터 66억달러를 빌렸다가 갚지 못해 2020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했다. 스리랑카는 빚을 갚지 못하자 함반토타 항구 지분의 80%를 2017년 중국에 강제적으로 넘겼다. 중국이 ‘명조(明朝) 정화(鄭和)가 아프리카 동부까지 진출했다’는 역사적 근거까지 들어가며 아프리카 진출의 거점으로 포섭한 지부티의 대외 부채는 중국의 자금 투입 초기인 2016년 국내총생산(GDP)의 50% 수준이었으나 2년 후 85%로 급증하며 파산 위기에 몰렸다. 70%가 중국에 진 빚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일대일로를 “빚 주고 빼앗는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그래픽=양진경

일대일로의 명암이 엇갈리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는 10주년을 계기로 일대일로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우리는 새로운 출발점에서 고품격 일대일로 건설을 모색할 준비가 됐다”고 1일 밝혔다. 중국의 다음 목표는 일대일로를 통해 얻은 국제 영향력을 자국의 이권을 위해 휘두르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 각국에 군사 기지와 보급 거점을 확보하면서(미 연구소 민주주의수호재단) 교통망과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해 미국에 맞설 것으로 보인다.

☞일대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 7일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학 강연에서 처음 제시한 중국의 대외 팽창 정책. 중국의 서쪽인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21세기판 육·해상 신실크로드를 개척한다는 구상이다.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미국의 손이 닿지 않는 개발도상국에서 인프라를 깔고 사실상의 군사기지·보급 거점을 확보하며 미국 중심 세계 질서에 대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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