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국민의힘, 용산의힘?
국민의힘 소속 경북지사 출신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며 “먹구름 위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먹구름을 걷어내고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신 구국의 지도자,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거의 북한 김정은을 찬양하는 조선노동당급”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루 전날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윤 대통령이 등장하자 100여 명의 소속 의원들이 일제히 “윤석열”을 연호했다. 젊은 세대들은 “부장님의 술자리를 보는 것 같다”는 분위기다. 이 자리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내가 윤석열이고 우리 모두가 윤석열”이라고 했다. 윤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이 거대 야당에 맞서 국정 운영의 책임감과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자”는 취지였지만, 국회 안팎에서는 “이제 ‘당정(黨政)동일체’를 넘어 ‘윤아(尹我)일체’ 수준까지 갔다”는 말이 나왔다.
사실 이러한 ‘윤비어천가’는 앞서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입시 비리 수사를 많이 해서 교육 전문가(박대출 정책위의장, 이주호 교육부장관)” 같은 발언의 연장 선상으로 여권의 일관된 기조기는 하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으로서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28일 최고위원회의실 배경을 “경제는 국민의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교체하며 “이제는 경제다”라는 민생 행보를 대대적으로 강조하고 나섰다. 내년 총선 전 마지막 정기 국회를 앞두고 집권 여당이 민생 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날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며 당과는 정반대 기조로 갔다. 지도부는 당황했다. 한 표 차이로도 당락이 좌우되는 의원들은 누구보다 민심에 예민하다. 총선을 7개월 앞둔 2023년 현재 “민생보다 이념”이라는 말이 중도층과 선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직언을 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명박·박근혜 때보다 윤 대통령의 당에 대한 ‘그립(장악력)’이 제일 센 것 같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비정치인 출신으로 계파 부담이 작고 정치 빚이 없어 눈치 볼 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수별·지역별 의원들끼리 소소하게 모이던 내부 모임들도 요즘은 사라진 분위기다. 국민의힘 한 중진은 “다들 용산만 쳐다보고 있는데 우리끼리 모여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했다.
집권당이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정당이 지지층을 넓히고 선거에 임해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그럴려면 서로 다른 주장이 부딪치며 내부가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의힘은 어떻게든 잡음 없는 이 조용한 상태를 총선까지만 끌고가면 승산이 있다고 믿는 모습이다. 차라리 당명을 ‘용산의힘’으로 바꿔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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