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동대지진 희생자 추모’마저 두쪽 낸 윤미향

성호철 도쿄 특파원 2023. 9.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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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지난 1일 일본 도쿄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주최한 관동(關東·간토)대지진 100주년 추도행사에 참석해 추모비에 헌화하고있다./마이니치신문

지난 1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 정부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개최한 ‘제100주년 관동대진재 한국인 순난자(殉難者) 추념식’에서 만난 한 재일동포는 “한국의 여야가 함께 와서 헌화했으니, 일본도 조선인 학살 문제를 마냥 무시하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말한 것이다. 추도식에서 가수 장사익씨가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 고령의 재일교포들은 눈물을 훔쳤다. 일본어도 못 한 채 일본에 돈 벌러 왔다 죽은 젊은이에 자신들 할아버지·할머니가 오버랩됐을 것이다.

뜨거웠던 추도식과는 달리 도쿄는 여전히 냉담했다. 추도식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등 일본 인사들이 참석했지만 일본 정치권의 본모습은 아니었다. 일본 내각 관료들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일한의원연맹의 회장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오지 않았다.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논리는 변함이 없다.

재일교포들의 염원은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살을 공식 조사하는 일이다. 몇 명이 죽었는지라도 알고 싶다. 하지만 1923년 일본 제국국회에서 당시 총리가 “조사 중”이라고 답변한 이후, 공식 조사는 없었다. 일본 넷우익들은 “폭행·도둑질같이 조선인이 죽을 만한 짓을 했다”와 같은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공식 조사를 관철하려면 정진석·윤호중 의원 2명만으론 부족하다. 수백 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한국인의 이름으로 나란히 서는 날이 와야 한다. 이런 달콤한 염원은 같은 날 깨졌다.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조총련이 개최한 ‘간또대진재 조선인학살 100주년 도꾜동포 추도모임’(북한식 표현)에 참석한 것이다. ‘남조선 괴뢰도당’, ‘(한·미·일이) 군사동맹에 박차를 가하며 주변국과의 적대를 강요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 추도식이다.

관동대지진의 추모는 두 쪽 났지만 윤 의원 측은 뭐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추모’의 정치적 활용 가치를 잘 아는 윤 의원이기에 북한이 학살의 비극을 한국·일본에 대한 정치 비난에 악용하는 게 당연해 보였을 것이다. 본인도 종군위안부 논란에 이어 조선인학살에도 한발 걸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인학살 추모는 이제 우군·적군으로 나눠 무조건 비난 공방을 펼치는 삼류정치의 나락에 떨어졌다. 여·야가 힘을 합쳐, 일본에 학살 조사를 요구할 기회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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