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불교 풍경 생생… 대장경 한글 번역 학승의 일기
‘기구(崎嶇)’ ‘구차(苟且)’ ‘부끄러움’ ‘나약’ ‘심약’ ‘아둔’ ‘암되어서’….
책을 펼치면 이런 자조(自嘲) 혹은 겸손의 표현이 즐비하다. 저자는 지난 6월 16일 입적한 전 봉선사 조실(祖室) 월운(月雲) 스님. 스승인 운허(耘虛·1892~1980) 스님의 뒤를 이어 2001년 ‘한글 대장경’ 전 318권 번역을 완성해, ‘역경(譯經)보살’로도 불리는 학승이다. 스님이 2014년 스스로 정리한 일기를 연세대 철학과 신규탁 교수 등이 추려 펴낸 ‘못다 갚을 은혜’에는 1950년대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한국 불교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경기 장단군(현 파주시)의 빈농 집안 장남이었던 스님은 6·25 직전 ‘돈 벌려고’ 집을 나섰던 것이 출가의 첫걸음이었다. 어릴 적 서당에서 한문을 익힌 것이 인연이 돼 “경학(經學)을 익혀 부처님 은혜 갚는 일”을 위해 학승의 길을 걷게 됐다. “우리 글을 가지고 있는 백성으로서 우리들의 대장경을 갖자”며 경전의 한글 번역에 매진한 스승을 도와 월운 스님도 온갖 어려움을 무릅썼다.
그러나 1950년대 사찰은 경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어느 날 부모가 경찰서 앞에 버리고 간 아이를 스님이 맡게 됐다. “나는 못 한다” 했더니 “그것도 못 하겠다면 그 숱한 경전은 무엇하러 읽는가?”라는 주변의 질책이 돌아왔다. 스님은 조계종 제25교구 본사(本寺)인 봉선사 주지(1976~1993)도 맡았다. 이 기간을 전후해 스님은 6·25 때 전소된 봉선사를 재건하고 전기와 상하수도를 끌어오면서 경전 번역을 병행했다. 신자들과 함께 10년 넘게 가사(袈裟)를 만들어 팔아 절 살림에 보태는 한편 어린이 대상 ‘하계 임간학교(林間學校·숲속학교)’와 ‘불경(佛經)서당’, 60분짜리 카세트 테이프 649개를 실비만 받고 보내주는 ‘불교전문통신강원(講院)’(1983~2009)도 개설하며 포교에 앞장섰다.
스님이 밝힌 포교 역량의 배분 원칙이 눈길을 끈다. ‘교리:(불교)역사:의식(儀式):실천’의 비율을 ‘1:2:3:4′로 나눈 것. 학승이라면 당연히 교리 공부의 비중을 높일 것 같지만 스님은 “교리는 기초적인 방향만 알아도 된다”며 “실천은 중생계에 헌신하는 것 외에 자기 내면의 세계를 부단히 훈련시켜야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문에서 “나의 생애는 기구하고도 구차했던 것이 자못 부끄럽고, 신세만 지고 하나도 갚지 못한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으나 그 ‘운명의 주재는 늘 나였구나’ 하는 사실 하나를 터득한 것을 금생(今生)의 소득으로 삼으련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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