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가 기억하는 아픈 현대사, 다큐같은 소설로 그려내다

조봉권 기자 2023. 9.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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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원로 소설가 강인수, 10번째 장편 ‘영남알프스’

- 광복부터 전쟁 전후 시기
- 이 산에서 벌어진 참상과
- 그 세월을 이겨낸 사람들

“모든 분들이 대인관계에서 용서와 화해를 염두에 두면 우선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넓어집니다. 복수를 하고자 하면 그 반대입니다. 용서와 화해야말로 평화에 이르는 길입니다.”

2007년 거울 영남알프스 간월재에 오른 강인수 작가. 그는 영남알프스를 “내 고향이자 수없이 다닌 산줄기”라고 했다. 세종출판사 제공


84세 부산 문단 원로 소설가는 5년에 걸쳐 쓴 10번째 장편소설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용서와 화해를 위한 기도’라고 제목을 붙인 ‘작가의 말’을 조금 더 듣고 싶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과 그 이후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영남알프스와 그 지역 마을들을 배경으로 한, 영남알프스 주민들의 이념과 사상과 대립과 갈등 그리고 사랑을 다룬 소설로, 화해와 용서를 그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원로 강인수 작가가 장편소설 ‘영남알프스’(세종출판사 펴냄)를 내놓았다. 그는 부산시문인협회장, 부경대 교수를 지냈고, 부산시문화상,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첫대목은 팔순의 퇴직한 언론인 정인주 씨가 중견 변호사로 성장한 아들 준성과 함께 영남알프스 준봉인 고헌산(1034m)을 오르는 장면이다. 정인주 씨는 영남알프스 권역인 함박산 서쪽 집성촌, 행촌리 황토말이 고향이다. 그는 아들에게 산 위에서 새삼스럽게 설명한다.

“해발 일천 미터 넘는 산으로 고헌산 운문산 가지산, 배냇골 동쪽 간월산, 신불산, 배냇골의 서쪽 천황산, 재약산이 영남알프스 7봉이지. 그 외 천 미터가 넘는 문복산(1013) 영축산(1081)이 있지. 문복산 영축산을 합하여 영남알프스 9봉이라 하지. 그 외에 해발 900이 넘는 백운산 능동산이 있지.”(26쪽) 어쩌면 건조하게 들릴 이 설명을 따라 소설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영남알프스 일대 산과 마을에서 벌어졌던 참화, 그런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 이야기 속으로 성큼 들어선다.

‘영남알프스’에서 받은 첫 번째 강렬한 느낌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였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체험하고 듣고 본 이야기, 나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수없이 다녔던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전쟁과 사랑. 이게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다.…이번의 다큐 장편소설 ‘영남알프스’를 집필하면서 각별한 긴장감이 내 온몸을 엄습했다”고 했다. 작가 또한 ‘다큐’를 어느 정도 쓰듯 써내려 갔다는 뜻이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한국전쟁을 관통해, 휴전 직후에 이르기까지 영남알프스 일대에서 펼쳐진 ‘공비’(빨치산)의 활동, 토벌대의 대응, 그 끔찍하고 힘겨운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 영남알프스라는 거대한 산군의 존재감을 세세하게 담았다. 영남알프스의 현대사를 이토록 실감 나고 세심하게 그린 장편소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영남알프스라는 대자연을 만끽하는 현대의 많은 등산애호가와 여행객은 대체로 이런 사연을 잘 모르지 않을까.

작품에서 상징성이 매우 강렬한 인물은 인혁·인현·인경 형제다. 마을의 부잣집 자손인 이들 삼형제의 운명은 전쟁 통에 극명하게 갈라진다. 일제강점기 와세다대학교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인혁은 일제가 조선 청년 지식인에게 전쟁 참여를 강요한 학병에서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영남알프스로 들어가 공비가 된다. 그렇지만 모진 행동은 못 하는 성격이다. 둘째 인현은 유능한 면서기였는데 형이 빨치산이 되자 전투경찰이 되고, 공비 토벌작전에 나갔다가 결혼 석 달 만에, 스물넷 나이에 전사한다.

셋째 인경은 한국전쟁 시기 크고 끔찍한 피해를 남긴 보도연맹에 끌려가 죽는다. 이들 삼형제의 사연은 후손과 가족·친척을 통해 이어져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의 맞닿게 된다.

영남알프스 산맥 산골마을 주민 신분인 여러 등장인물은 전쟁 시기를 전후한 시기 “대체 이념이 뭐기에…좌익 우익이 뭐기에…험한 세상…더러운 세상”을 되뇌며 괴로워한다. 팔순의 원로 언론인 정인주 씨는 이런 사정을 두루 알고 용서와 화해를 위해 애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결말 대목은 꽤 충격이 커 잠시 어리둥절해지기도 했다. 부산 문단에서 태어난 뜻깊은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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