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70> 부산요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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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조선 시대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왜관을 통한 한류 현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바로 부산요 도자기이다.
부산박물관 수장고에는 초량왜관에서 출토된 부산요 도자기가 다수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극화한 세계질서에 맞춰 적대적 경쟁 관계를 넘어, 조선 시대 왜관을 통한 부산요 도자기의 한일합작품처럼 한국과 일본의 윈윈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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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오늘날 세계 문화산업 흐름의 중심에는 한국이 있다. 우리는 한류를 현대에 들어 처음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왜관을 통한 한류 현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바로 부산요 도자기이다.
조선 후기 부산요 도자기는 대일 외교의 최고 수출 상품이었다. 부산요는 1639년(인조 17년)에 처음 설치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의 도자기를 선호했던 일본 막부 정부는 원하는 문양을 넣은 다완의 견본을 대마도로 보내고, 대마도는 동래부에 주문서를 보내 제작을 의뢰했다. 이에 동래부는 예조(禮曹)의 허가를 받아 도공을 소집하고 다완을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했다.
일본의 주문을 받아 수출용 도자기를 제작하던 가마는 처음에는 왜관 바깥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17세기 중반 두모포왜관 안에 가마를 설치했다가 초량왜관 시기가 되면서 과거 부산부립병원(釜山府立病院)이 있던 자리에 부산요를 설치했다. 도자기를 굽는 흙은 하동 진주 울산 부산 김해 등 경상도 일대의 흙을 사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토와 연료의 수급이 어려워져 결국 18세기 초 가마가 폐쇄되었다.
왜관에서 생산된 주문 다완은 여러 종류와 형태가 있는데, 그릇의 모양, 도공, 직명(職名), 제작 배경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전해진다. 조선 사발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고키(五器), 장군의 어용선 편에 견본을 보냈다는 의미의 고쇼마루(御所丸), 귀얄 문양이 특징인 하케메이라보(刷毛伊羅保), 판사(역관)의 감독 아래 만들었다는 판사다완(判事茶碗), 장군의 견본이라는 의미의 고혼다완(御本茶碗), 일본의 칠기(또는 목기)에 조선백자의 오목굽이 만나서 새로운 모양이 만들어졌다는 오기다완(吳器茶碗) 등이 있다.
부산박물관 수장고에는 초량왜관에서 출토된 부산요 도자기가 다수 보관되어 있다. 이는 2018년 초량왜관 선창(부두)으로 추정되는 중구 동광동 한 부지에서 참관조사로 수습된 것이다.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초량왜관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조사로 발견된 유물이라 의의가 크다.
출토된 부산요 도자기의 종류는 대부분 고혼다완(御本茶碗)이다. 부산요 도자기와 함께 대마도인이 직접 바다를 건너와 생활하면서 썼던 대마도산 그릇도 같이 수습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산요와 대마도에서 생산되지 않은 조선과 일본의 그릇도 발견됐다. 이는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교류가 실제로 얼마나 활발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맞아 양국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개된 한일 교류가 어느 쪽에 유리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극화한 세계질서에 맞춰 적대적 경쟁 관계를 넘어, 조선 시대 왜관을 통한 부산요 도자기의 한일합작품처럼 한국과 일본의 윈윈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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