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국방장관 전격 경질…대반격·反부패 승부수
- 후임에 野 정치인 우메로우 지명
- 크림반도 타타르인 출신 무슬림
- “내정자, 추가 설명이 필요 없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국방수장이 전격 경질됐다. 신임 국방장관으로 러시아 저항운동을 상징하는 소수민족인 크림(크름) 타타르인 출신이 지명됐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 AP AFP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렉시 레즈니코우(57)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야당 정치인인 루스템 우메로우(41·사진) 국유자산기금 대표를 신임 국방장관에 지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연설에서 “국방장관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레즈니코우는 550일 이상 전면전을 겪었다”면서 “국방부가 군대 및 사회 전체와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우메로우 내정자에 대해서는 “추가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며 의회 인준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레즈니코우 경질은 우크라이나가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진행됐다. 2021년 11월 국방장관직에 오른 레즈니코우는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서방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끌어오는 데 앞장서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나, 올해 1월 국방부가 식량을 부풀려진 가격에 구매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 필요한 서방의 지원을 받고, 유럽연합(EU) 가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는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구호물자 배분이나 징병 조달 등에서 각종 비리사건이 터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시 부패를 국가반역죄로 다스리는 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전날 국외로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재벌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를 체포했다. 올해 1월에는 국방부 차관, 검찰 부총장 등 10여 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고 지난달 11일엔 전국 병무청장을 일제히 해임하기도 했다. 부패감시 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 조사 결과 2021년 우크라이나의 ‘부패인식지수’는 전 세계 180개국 가운데 120위로,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부패 지수가 높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국방장관 경질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지도부 최대 개편(shake-up)”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번 레즈니코우 장관의 경질에는 부패 스캔들 외에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인식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고 전했다.
신임 국방장관에 지명된 우메로우 내정자는 야당인 홀로스(목소리)당 소속 의회 의원으로, 소수민족인 크림 타타르인 출신의 젊은 정치인이다. 그는 1982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태어났다. 옛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했던 그의 가족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크림 타타르인의 귀환이 허용된 뒤 크림반도로 돌아왔다.
우메로우 장관 내정자는 작년 7월부터 국유자산 민영화를 감독하는 기관인 국유자산기금 대표를 맡아 자신이 취임하기 전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조직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쟁 이후에는 전쟁포로 및 정치범 맞교환 협상, 점령지 민간인 대피 등과 관련해 러시아 측과 대화에 관여했고 러시아와의 흑해곡물협상을 논의하는 대표단에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통치 아래 박해를 받았고, 크림반도가 2014년 러시아에 강제 병합된 뒤 러시아에 맞서 저항운동을 벌이는 크림 타타르인의 후예라는 점이 발탁 배경이라고 외신은 풀이한다. 크림 타타르인은 크림반도의 원주민 격인 우크라이나 소수민족으로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이다. 13세기 전후부터 크림반도에 정착한 튀르크계 민족으로, 15~18세기 우크라이나 남부와 크림반도 일대를 지배한 크림칸국의 후예다.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에 크림칸국이 멸망하자 탄압을 받으며 뿔뿔이 흩어졌고, 귀환 허용 뒤 다시 모여들어 현재 크림반도 주민 200만 명 중 약 12~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림반도가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는 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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